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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2<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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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백성들의 죄를 제사를 통해 대신 사죄하고 사함을 받도록하는자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부분적인 직임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곧 메시야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알게하는 참 선지자의 역할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대신 속하는 참 제사장의 직임을 수행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왕중왕의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온전한 직임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하신 의미는 그때까지의 지상사역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를 물어본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정도로만 알고 있다는것입니다. 물론 함께있었던 베드로는 그리스도임을 알았지만 이것은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가능한 경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그리스도 곧 메시야인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살아나실것을 예언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고 제사장이 되셔서 온전한 제사를 지내심으로 죄를 대속하여주실것에 대한 선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중요한 직임중 선지직임에 이어 이제는 온전한 참 제사장의 직임을 모든 백성을 대신하여 수행한다는 예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메시야라는 증언이지요

예수님은 구원자 곧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하여 죽으실것을 말하는데 베드로는 오히려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자가 될것을 선언합니다. 죽는다는 자신의 스승을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용기있는 말은 의리가 있어 보여 좋기는 하지만 사실 베드로는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세번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던 사단의 종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신이 어떤 능력이 있는줄로 착각하지요 베드로만 그러합니까? 모든 사람이 사실은 베드로 처럼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리스도 곧 메시야이신 예수는 베드로를 비유로 들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을 자에게 자기를 부인할것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질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이 무엇이나 이루어낼수있는 능력이 있는줄로 아는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은 대부분 하나님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어서 안달하지요 자신이 하나님에게 무엇을 해주면 하나님이 기뻐할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것 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능한 사람들을 섬기시려는 것입니다. 섬기시는것 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신하여 자기 자신을 드리기 까지 하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협력은 조금도 필요하지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자 곧 메시야를 따르는 자는 자기의 능력부터 부인되어야 할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것은 어떤 고생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부분 이구절을 읽고는 십자가 짐같은 고생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라야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자기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곧 자기에 대한 사망 선고를 뜻하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고생을 하도록 하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죽음에 이르도록하는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은 자신의 능력이 전혀없고 사망에 종노릇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부인되고 자기의 능력이 부정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만 구원에 이를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의 목숨을 자신이 구원코자하면 오히려 잃게되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목숨을 버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부정할때 그리스도 곧 구원자의 은총을 바라게 되는 것이고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을때 메시야의 구원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나 할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않고 사람의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윗 글은 어느 기독사이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정말 논리정연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황사에 덮인 하늘, 그 사이로도 햇살이 비추입니다.
좋은일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좋지 않은 일는 사탄이 하는 것이라는 식의
말도 안되는 이원론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잘하면 그 결과가 좋거나, 복은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거나 좋지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식의 어리석음도
이제 그만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진다면
신은 인간의 하수인에 불과한 것이며, 유감스럽게도 그 신이란 존재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바로 하나님을 지칭하는 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일이란 것을 인식해야겠습니다.
우리의 행위여하에 관계없다는 말을 아무따나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무지몽매함은 더 더욱 없어야 할 것이구요(사족이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의 원천은
인간세상(시.공.형)과 인간의 감정이 신의 세계(시.공.형을 초월하는 영적 세계)와 신의 감정(?)과 교감할 수 있거나 비슷할거라는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자기가 아프거나 자기 교회가 안되면 하나님이 손해일거라는 우스개소리를 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발상인지를...
우리의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잘 알면서도, 자기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곧잘 잊어 버립니다.
연약한 건 인간(남)이지 내가 아니다는 식의...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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