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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늦가을 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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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상률 목사(후암교회)

  꽃을 사랑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캐나다에 가면 BC주 정부청사가 있는      빅토리아 섬(Vancouver Island)에 부처드 가든        (Butchart Gardens)이라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있  다. 그곳에는 없는 꽃이 없다 할 만큼 세계 여러 나라의 꽃들을 다  모아놓은 듯 하고 그 꽃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정원도 환상적으로 꾸며져 있다. 그곳에 일 년 내내 매일같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꽃을 동경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꽃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 꽃과 나무로 정원을 꾸미거나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에도 철철이 화분을 바꿔놓으면서 꽃의 향기를 맡으며 사는 것이다. 요즈음은 화초를 재배하고 가꾸는 기술이 발달하여 우리나라의 꽃들이 네델란드로 수출되고 세계시장으로 팔려나가는 등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발돋움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꽃의 산업화는 과학문명의 발달과 인위적인 기술에 의하여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나들고 있다. 기후나 풍토에 상관없이 동서양 어디서나 국적을 달리하는 꽃들을 볼 수 있고 계절에 상관없이 전천후로 갖고 싶은 꽃들을 언제든지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온실에서나 화원에서 최적의 조건으로 재배되고 귀족처럼 대접을 받는 꽃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달리 산과 들, 어디에서나 제멋대로 나서 제멋대로 자라는 야생 꽃들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은 이런 꽃들을 더 동경하고 가까이 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전 교회식구들과 함께 부산에 갔다가 <흙시루>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집은 부산근교에서 상당히 알려진 음식점으로 찾는 사람이 꽤나 많았다. 넓은 텃밭에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토종 꽃들로 화원을 만들어놓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곳을 관람하게 하고 있었다. 거기 있는 대부분의 꽃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산과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었다. 그때는 관심도 주지 않던 하찮은 들꽃에 불과하였는데 어찌된 셈인지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마음에 향수를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재래종 꽃들은 오랜 세월 이 땅의 기후와 풍토에 젖어 우리민족의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숱한 역사의 질곡을 거치면서 민족과 호흡을 같이하며 살아 왔기에 오히려 더 각별한 친근감을 갖게 되는지 모른다.

그중에도 나는 늦은 가을 산과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들국화를 좋아한다. 장미나 백합 또는 개량종 국화처럼 장식용 꽃다발이나 축하 받는 화환에는 끼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본래의 자기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야산자락이나 또는 논두렁, 밭 언덕에 피어있으면서 늦은 가을 찬 서리가 내리는데도 보랏빛 그 모습으로 순수한 자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개나리나 진달래처럼 화려한 색깔도 없고, 목련이나 매화처럼 우아하고 단정한 기품도 보이지 못하며, 활짝 핀 벚꽃처럼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인기도 없다. 다만 아직도 동면(冬眠)준비를 못 다한 벌들이 춥고 긴 겨울 양식을 위하여 그 꽃을 찾아오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른 봄부터 한 여름 초가을까지 형형색색 그 많던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이 계절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이들 들국화 송이들은 쓸쓸한 가을산야를 바라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진동하는 꽃향기 대신 나는 듯 마는 듯 스쳐 가는 바람결에 그윽한 국향(菊香)을 풍기면서 은근히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지혜자 솔로몬의 노래에 나오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는 늦가을 들국화의 모습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묘사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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