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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눈앞 현실 너머 주님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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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로뎀나무 아래 앉아 좌절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다소 의아하다. 이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한 순간에 무너져 자살 충동을 느끼다니 말이다.

엘리야의 갑작스런 침체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필자는 근본 원인을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라는 열왕기상 19장 3절 말씀에서 찾는다. 엘리야는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이세벨의 모습을 보았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길길이 날뛰는 이세벨의 모습만 보았다. 이것이 문제였다.

영적 침체는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만 바라볼 때 생기는 현상이다.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풍보다는 자기를 도우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는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출렁이는 파도에로 옮겨지면서 물에 빠지는 갑작스런 침체를 겪게 되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상황에만 집중하면 베드로처럼 물에 빠지고 엘리야처럼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집중되면 ‘현실에 대한 과장된 상황인식’의 태도가 발생한다. 작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절망하면서 ‘죽겠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엘리야를 죽여버리겠다는 이세벨의 위협은 무기력한 협박에 불과했다. 이미 백성들의 마음이 엘리야에게로 돌아섰기 때문에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힘없는 협박에 놀아났다.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면 현실을 침소봉대하게 되는 것이다.

복잡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스트레스 쌓이게 하는 현실만 바라보면 반드시 절망한다. 현실을 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에서를 보라. 사냥을 다녀와서 배가 고프던 차에 동생 야곱이 먹음직스러운 팥죽을 들고 와서 장자의 명분과 맞바꾸자고 한다. 그 때 에서가 뭐라고 얘기하는가?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 25:32)

한 끼 굶는다고 죽지 않는다. 시선이 온통 먹음직스런 팥죽과 배고픈 현실에 집중되다 보니 현실을 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장된 상황인식이 에서를 망하게 했다. 오늘 우리에게 에서와 같은 태도는 없는가? 엘리야처럼 현실을 과장하고 있지 않은가? 어려운 현실보다는 그 현실을 뛰어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래서 우리도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자.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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