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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낙엽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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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노아의 시대에 있었던 홍수심판 때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짝을 이루어 방주에 들어오게 허락하셨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도 부부가 방주에 들어갔고 모든 동물도 암수가 짝을 이뤄 구원의 방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선'이 방주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짝을 구하지 못함 때문이었다. 방주에 들어가고 싶었던 '선'은 마침 주변에 자신처럼 짝을 구하지 못해 애타하던 '악'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제안하기를 '우리가 짝이 되어 방주에 함께 들어가자'고 했고 둘은 방주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때부터 지금까지 선이 있는 곳에 항상 악이 공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찌하여 악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성경은 악의 근원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 악이 있음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이를 경계하여 신중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다. 에덴동산에도 뱀이 있어 아담 부부를 유혹했다는 창세기의 기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보편화된 현상으로 악이 존재하는지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셨다. 분명히 가라지가 있지만 마지막 날에 주인이 친히 불태울 것을 말씀하시면서 악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은 결코 악에 대해 무능하지 않으시고 방치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고민은 남는다. 우리가 매일 살면서 만나는 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의 문제 때문이다.

신학자 틸리케는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거룩한 공포심'이 우리에게 동시에 필요하다고 했다. 인간의 판단능력 부족과 오류성 때문에 쉽게 판단하고 정죄할 일은 아니지만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악의 세력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거룩한 공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경계하고 자기를 살펴 우리가 믿음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자신과 교회의 성결을 유지하고 세상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다. 동시에 우리는 세상의 악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늘 민감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세상에 악한 일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라고 했다.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고 가르치고 있다. 악의 세력이 너무나 번성해 그 힘을 과시하지만 결국 허무로 종결되는 현상들과 한때 악의 세력과 손잡고 천하를 다스리듯 하던 자들이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휩쓸려가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악의 종말에 대한 경고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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