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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만남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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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연 (소설가)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시18:28)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주위의 잿빛 풍경이 암담하게 가슴을 누를수록 반사적으로 환한 것, 자신을 일으켜줄 빛과 소리 그리고 에너지를 원합니다. 위로 끌어올려 줄 따스한 등불 같은 존재를 갈망합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완성을 향해 나갑니다.

동네의 은행나무 길은 지금 온통 노란 세상입니다. 외등 불빛에 반짝이는 잎들은 환하게 불을 켜는 듯하고, 침침한 의식들은 몸 밖으로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어두운 죄악의 찌꺼기들이 허공의 불빛에 깨어져 몸뚱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합니다. 저녁 한때의 이 아름다운 풍경은 마음을 비춰주는 등불 같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이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고즈넉이 내리는 오후, 풀밭 벤치에 앉아 명상에 잠길 때 맨 먼저 떠오르는 너의 얼굴…. 이제사 감사함을 낙엽 위에 보내드립니다.’ 이름 대신 이니셜이 적혀 있었지만,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수첩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지난 날의 흐린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아픔도 살아났고, 기쁨도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성숙을 위해 자극을 주는 관계였죠. 보이지 않는 가운데 흘러가는 흐름이 있었죠. 그 줄기를 따라가면 변화하고 자유스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침묵과 말과 삶의 여운 속에서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그 어느 때, 무슨 오해로 헤어지고 말았지요. 모든 것은 예견치 않게 갑자기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는 깨어지기 쉬운 한 방울의 이슬이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고 나면, 단 하나의 낱말로 그 관계를 요약할 수 있죠. 배신이나 허망, 또는 변신….

이 가을, 우리는 등불 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울타리 밖의 한 마리 양이 되어 험하지만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갑니다.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가면, 어느새 하나의 우주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갈망을 할 때는 어디선가 국화꽃 향기가 밀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건 심연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의지와 소망의 향기이지요. 믿음이 한 송이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는 향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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