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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속일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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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규(내리교회 목사)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이지 못하겠고,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는 전언이 있다. 누가 더 훌륭할까? 속이려고 해도 겁이 나서 감히 속일 수 없는 용장이 있다. 너무 똑똑해서 절대 속아넘어가지 않는 지장이 있다. 적당히 꾀를 내면 속여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차마 속일 수 없는 덕장이 있다. 이원익이 덕장이라면 유성룡은 지장인 셈이다. 속이기로 작정하면 속일 수도 있지만 그 덕이 워낙 뛰어나 죄책감 없이 차마 속일 수 없는 덕장이 으뜸이리라.

창세기에 이삭은 아브라함이나 야곱, 요셉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된다. 그러나 그는 인격적인 면에서 그 누구보다 관대하고 후덕했다. ‘이삭’ 하면 대뜸 ‘우물 파는 사람’ 이미지가 떠오른다. 중동 사막 지대에서 우물은 사람이나 짐승에게 생존권과 결부된다. 기근을 만난 이삭이 블레셋 지역으로 피신해 일약 거부가 되자 시기를 당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종들이 판 우물들을 메워 쫓아낸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이삭은 따지거나 복수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다른 곳으로 떠나 또 다른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고생해서 판 우물을 메우면 또 다른 우물을 파고 또 파기를 거듭해서 일곱 번이나 팠다. 이렇게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 잠잠히 물러서고 양보했더니 마침내 블레셋 왕과 신하들이 무릎을 꿇었다. 덕장 이삭의 승리였다.

목회를 하다보면 어이없는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시기받고 모함당하고 상처를 입어 피 흘릴 때가 있다. 가슴 속에 욱박힌 기막힌 사연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러나 그 때 똑같은 방법으로 대항해서는 이길 수가 없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수단을 써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십중팔구 문제가 더 꼬인다. 그저 묵묵히 물러서고 지는 것처럼 보일 때 거꾸로 이긴다.

블레셋 사람들이 볼 때 이삭은 어수룩했을 것이다. 숫제 얼마든지 속여먹을 수 있는 얼간이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고생고생해서 파놓은 우물들을 여러 차례 없애버려도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이삭이라고 해서 왜 배알이 없었겠는가마는 다 알면서도 속아주고 잠잠히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랬더니 마침내 세상이 그의 관후함을 알아주어 최후 승자가 되지 않았는가. 어쩌면 에서 대신 야곱을 축복했을 때에도 일부러 눈감아준 것은 아닐까. 별의 별 사람을 만나며 상처받기 쉬운 것이 목사다.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얼마든지 속여먹을 수 있지만 천벌을 받지 어찌 속일 수 있단 말인가”라고 평하는 덕장 이삭의 경지에 이르지 못함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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