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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름이 낀 날은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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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곤 목사(열린교회)

사마천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하여 "농업이 공업만 못하고, 공업이 상업만 못하다"면서 비단에 수를 놓는 일보다는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장사만 하면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 낀 날에 운동화를 팔러나가고, 햇빛 내리쪼이는 날에 우산을 들고 나가면 안됩니다.

한정주씨가 지은 “조선의 거상 경영을 말하다”에는 조선시대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 부자 백선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선행은 열여섯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후 자수성가해 평양을 대표할 만큼 큰 갑부가 된 입지전적인 여인입니다. 그녀의 생활신조는 "먹기 싫은 음식을 먹고, 입기 싫은 옷을 입고,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화씨를 발라 기름을 짜고, 물레와 베틀을 마련해 밤새도록 무명과 명주를 짜 시장에 내다 팔면서 근검절약하여 작은 부를 얻었습니다. 그녀가 큰 부자가 된 것은 한푼 두푼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바위산에 불과한 만달산을 사들인 때부터였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었고 그 변화 속에 무엇이 가치 있을 것인가를 예측한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석회석이 많이 나는 땅을 산다는 소문을 듣고 경성을 돌아보고 온 다음,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시멘트에 필요한 원료인 석회석이 대량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에 불과한 만달산이 그녀에게는 석회석이 풍부한 황금의 산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장사하여도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미두왕'으로 이름을 날린 김복천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가게에서 점원을 하며 어렵게 돈을 모은 그는 오랜 점원생활을 통해 체득한 상술을 밑천 삼아 곡물 장사로 거부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김복천의 성공 신화는 1920년대 말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답니다. 미국에 이어 일본에 불어닥친 경제 불황으로 쌀값이 폭락하자 김복천은 더 큰 시세 차익을 남길 목적으로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빚까지 내어 쌀을 사들였답니다. 그러나 장기간의 대공황으로 쌀값은 더욱 폭락했고, 이 때문에 김복천은 창고에 쌓아 둔 엄청난 양의 쌀을 헐값에 내다 팔 수밖에 없었답니다. 결국 빚을 갚을 돈조차 제대로 건지지 못한 김복천은 몰락하고 말았답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인생의 성공과 직결됩니다. 죽음 후에 진정한 성공을 거두려면 죽음 이후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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