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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의 삶, 예수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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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명수 목사(밝은교회 담임)

1994년 스위스에서 48명이 집단으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그들은 이른바 ‘태양 사원’이라는 이단에 속한 신도들로 알려졌다. 미국 텍사스에서도 이와 같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데이비드 코레쉬라는 사람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교주로 행세하다가 결국 그를 추종하는 많은 신도들과 함께 자폭한 사건이었다. 이런 류의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소위 오대양 사건이 그것이다. 그들도 역시 그들이 믿는 교리에 근거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집단 자살극을 벌인 부류 모두가 성경을 자기들의 교리 원전으로 삼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분파나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를 잘 살펴보면 그들은 전통적인 교리나 가르침을 거부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가르침과 다른 색다른 가르침이 있으면 그것에 쉽게 빠져든다. 어떤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점을 잘 이용하여 기존의 가르침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가르침을 내어 놓기를 좋아한다. 그 새로운 가르침에는 열성분자들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열성분자들 때문에 새로운 가르침이 계속해서 유지된다.

그런데 아무리 고상하고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한 종교의 정통 교리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세우려 한다면 일단 의심을 해봐야 한다. 이와 같이 집단 자살을 강행했던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어떤 가르침에 대한 맹세 때문에 그와 같은 집단 자살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에 나타난 큰 흐름을 쉽게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귀중한 생명을 쉽게 포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땅 위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살아가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이다. 그래서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삶을 살아가는 행위는 대단히 귀중한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 그 자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 절대 명령을 깨뜨릴 만한 새로운 가르침은 없다. 어느 유명한 신학자나 철학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이 이렇게 가르칠 수 있다.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은 불살라질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은 무의미하고, 한시적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만이 영원한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그 또한 진리가 아니다. 그가 비록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해서 신령하다는 평을 받았을지라도 삶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거짓이다.

이 세상에서 성실하고 값진 삶을 산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성실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준비가 안된 사람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삶이 우리 가운데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삶이 아닌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꼐서는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삶을 포기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삶은 삶이다. 삶 그 자체는 귀중하다. 삶을 포기하는 행위가 자살이다.

‘자살’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읽어 보라. ‘살자’라는 글자가 된다. 이렇게 우리가 자살을 할 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조금만 각도를 바꾸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오늘도 성실하게 삶을 영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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