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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작은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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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담임)

우리나라 해군 함정 중에 이순신함이 2척 있다. 하나는 4000톤급 한국형 구축함이고, 다른 하나는 국산 7호 잠수함이다. 왜 똑같은 이름을 가진 함정이 2척이나 될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동명이인이기 때문이다. 구축함에 붙은 이순신은 우리가 잘 아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고, 잠수함에 붙은 이순신은 무의공 이순신(李純信)이다. 두 사람 다, 임진왜란 때 맹활약을 해서 나라를 구한 훌륭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선을 만든 충무공 이순신 장군만 기억한다. 워낙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충무공은 영웅을 넘어선 성웅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적의 크기만을 따진다면 무의공 이순신 장군이 충무공에는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공 이순신 장군도 충무공 못지않게 나라를 사랑한 장수였고, 실제로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전쟁 후 선무공신 3등이 되었는데, 3등공신이 18명밖에 안 되는 것을 볼 때 무의공의 공도 대단히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무공이 1등 공신이었다는 것과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웅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누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기준으로 굳이 나눈다면 충무공은 큰 이순신이고, 무의공은 작은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의공은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서 충무공보다 9년 늦은 1554년에 태어났다. 어려서 학봉 김성일 문하에서 글을 배웠는데, 무예에 관심이 많아 1578년(선조 11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무의공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인 충무공의 휘하 장수로 참전하여 항상 선두에 나서 옥포, 부산포, 당항포, 안골포, 한산도 해전에서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의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역사에는 무의공처럼 거목에 가려진 작은 충신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만 기억하지 작은 충신들은 기억 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과 업적이 과소평가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크고 작은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적의 차이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릇의 차이고 역량의 차이지, 최선의 차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의공의 경우는 특히 같은 이름이었기에 더욱 충무공의 그늘에 가리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그의 공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참전한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하자 대신 조선 수군을 이끌고 승리를 마무리한 것을 볼 때도 무의공의 역량은 사실 대단했다. 그럼에도 후세의 사람들은 이순신하면 충무공만 떠올리지 무의공 이순신이 있는지 그 존재조차 모른다. 세상적으로는 이렇게 큰 자, 작은 자 나눌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는 최선을 다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큰 자라고 할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모든 영광과 관심이 집중될 때 무의공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충성을 다했을 것이다. 그게 작은 자의 모습이다.

성경에도 보면 동명이인이지만 뛰어난 사람들에 가려 기억되지 못하는 인물들이 많이 있다. 요셉하면 야곱의 아들로 애굽의 총리를 지낸 꿈의 사람 요셉을 기억하지, 예수님을 장사하고 굴을 내준 의로운 요셉은 생각하지 않는다. 시몬하면 베드로를 생각하지 예수님의 12제자였던 가나안인 시몬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들의 신실한 믿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 작은 자일지는 모르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큰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작은 자들을 찾고 계신다(대하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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