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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밤을 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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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애(화가)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출 16;20)

여름이 너무 길고 지루했던 탓에 10월은 한결 느긋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때가 되면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물러가고, 아람 밤송이가 바람결에 투두둑 떨어집니다. 시원한 가을바람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실한 밤톨을 보며 치밀하신 창조주의 손길에 다시 한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이곳 강원도 산골 생활이 주는 기쁨의 하나가 아침 산책길 밤 줍기랍니다. 새벽기도 후 제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남편은 뒷산 산책길에서 덧옷 양편 주머니가 불룩하게 밤을 주워옵니다. 얼른 삶아낸 밤을 벗겨 가족들에게 권하며 올 해 유난히 맛있는 밤을 즐깁니다. 지난 5월 어느날 갑자기 불꽃놀이를 하듯 밤꽃이 숲을 하얗게 덮기에 올해는 밤 풍년이 들 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산에는 어디를 가나 밤나무가 있습니다. 이맘때 산행을 하면 밤 줍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름내 지친 몸을 밤의 풍성한 영양으로 회복시키라고 산마다 밤나무를 예비하셨나 봅니다. 예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건강한 아이의 실한 모습을 “밤벌레처럼 통통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 나라는 계절마다 먹거리가 구별되어 있습니다. 계절에 나오는 먹거리를 절기에 맞춰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알밤은 저장할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밤을 많이 주워다 담아놓고 한밤을 지내고 나면 그릇 밑에 꼬물거리는 밤벌레가 잔뜩 기어 나와 깜짝 놀라게 됩니다. 벌레 먹고 썪은 밤은 시금털털하니 아주 입맛을 버려 놓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밤을 주워 먹으며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에게 매일 내려 주셨던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출16;18)고 기록한 만나를 생각합니다.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두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는 성경말씀이 밤 줍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디 밤뿐일까요. 돈도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모아놓은 재산이 자식들의 앞날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몸집이 커서 많이 먹어야 하는 사람이 많이 거두는 것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한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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