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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북한과의 평화, 한 쪽 눈엔 냉정과 비판의 눈을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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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고] 신학자의 눈으로 살펴본 ‘2007 남북정상회담’

-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장)

2000년 6∙15선언에 이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10∙4선언이 채택되었다. 남북정상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비롯한 남북한 경제협력사업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선언은 현재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하여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상호대화와 협력을 함으로써 긴장과 갈등을 줄이고 통일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남북한의 정상은 수시로 만나서 서로 간에 정전대치 상태를 끝내고 평화협정으로 나아가고 통일과 번영을 이루는자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남과 북의 이념과 체제를 무시하는 비현실적인 환상적이고 감상적인 평화주의이다. 오늘날 남북관계를 진행시키는 데 요청되는 것은 현실주의적, 실제적인, 비판적인 접근방식이다. 공동협력과 교류와 통일이 실현되는 선결조건은 남북 당사자가 비록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서도 상호주의적으로 현실인식을 나눈다는 것이다. 일방주의는 있을 수 없다.

1)북의 개혁 개방을 전제하지 않는 경제협력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한 제 2차 개성공단 특구, 서해평화협력지대, 해주, 안변, 남포 특구,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수송, 개선-신의주 철도및 고속도로 개보수사업, 백두산-서울 직항로사업의 전제조건은 통행, 통신, 통관 등의 인프라 보장및 간소화이다. 경제특구의 성공이란 특구 설치라는 하드웨어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활용하는 기업적인 마인드활성화가 요청된다. 오늘날 중국이 이념을 장벽을 깨고 공산주의 내에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개혁개방에 성공한 것 처럼 북한의 경제재건은 정권 마인드의 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2박3일 평양방문을 하고 돌아온 노 대통령은 “개혁과 개방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오늘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느꼈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이란 아직도 북한은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에 대하여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한에 이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했다는 것은 선군정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혁개방 없는 경제협력은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아지는 분위기 가운데 노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자기 국정상황을 소상하게 꿰뚫고 있었다” “김위원장이 자기들 체제에 대한 분명한 소신,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좋다, 나쁘다 이런 의사표현이 아주 분명했다” “과연 진짜 권력자답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기다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하면서 “NLL은 영토개념이 아니다” “영토개념 발상은 국민을 오도한다”라고 혼란을 야기하는 노대통령의 모습을 보자니 69년전 뮌헨에로 달려가 독일 총동 히틀러의 침략 야망을 무마시키려는 영국 네임 체임벌린 총리의 유약하고 환상적 평화주의 역사인식이 연상된다.

2)체임벌린 유화정책의 교훈

당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Chamberlain)은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며 공공연하게 자신의 야망을 실행시킨 독일 총통 히틀러에 대하여 “전쟁을 피한다”는 명목하에 나치 독일에 타협하는 정책을 지속했다. 그는 다음같이 유화정책의 이유를 밝혔다: “우리는 크고 강력한 이웃 나라와 대결하고 있는 조그만 나라에 동정하지만 어떠한 사정이 있든 다만 그것만을 위하여 전 대영제국을 전쟁으로 이끌어 넣을 수는 없다... 나는 내 영혼 깊숙한 곳까지 철저한 평화애호가이다. 국가 간의 무력충돌은 내게는 악몽이다..”

1938년 뮌헨회담은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의 결정판이었다. 1938년 10월 나치 독일의 체코 침공문제로 뮌헨에서 히틀러(Hitler)를 만나고 그는 다음같이 말했다: “그 사나이는 냉혹하고 고집투성이지만 나는 그의 참다운 모습을 본 것처럼 생각된다. 나는 그 인물에게서 한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체임벌린은 독재자 히틀러를 만나보니 그를 신뢰할 수 있으며, 그가 평화 환상을 가졌다고 말했다: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가 서명한 평화선언서를 들고 귀국하면서 선언서를 흔들면서 “여기 우리 시대의 평화가 있다”고 외쳤고, 영국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런던타임스는 “전장에서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온 정복자의 누구도 이보다 고귀한 월계관으로 장식된 사람은 없었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을 한 지도자와 그에 의해 오도된 국민들과 왜곡된 언론의 전형적인 예가 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그후 불과 1년 만인 1939년 3월 15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여 프라하에 입성하고 다음날 히틀러는 보헤미아와 모리비아를 독일에 병합시킨다. 따라서 체임벌린 총리가 ‘거대한 오판’을 했음이 드러났고 1939년 4월 영국과 유럽국가들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3)비판적 평화주의
지난 26년 간 북한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하여 취한 조약및 합의안은 이행과는 거리가 멀고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연출각본과 같은 것이 아니었든가 라고 반성해보는 비판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만약 북한이 그동안 우리 정부 또는 미국과 맺은 합의서 대로만 했다면 이미 평화협정은 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1991년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93년 1차 북핵 위기, 2002년 2차 북핵 위기, 2006년 핵실험으로 보란 듯이 깨버렸다. 그간의 북의 행보는 당시 히틀러의 행보보다 결코 덜하다고 볼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귀국보고회 연설을 통해 “북한 지도자가 핵폐기 이행의지를 밝힌 만큼 (비핵화) 이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 핵이 폐기되기를 바라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독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왜 오늘의 한반도 정상회담을 바라보면서 유화정책의 대명사가 돼 버린 영국의 체임벌린 전(前) 영국 총리가 자꾸만 연상되는 것일까? 인간의 인식은 유한하며 역사적 상황에 제약되어 있으며 자기의 편견과 생육환경에 제약되어 있다. 인간 인식의 제한과 오류를 시정하도록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정부는 북한정권과 대화하되 비판적이고 냉정한 성찰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보수나 진보나 다같이 역사를 통해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끼리’라는 감상적인 환상(幻想)적 평화주의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신앙과 자유와 인간 존엄성과 인권이 억압당하는 북한의 실상을 냉정히 성찰하는 비판적, 현실(現實)적 평화주의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평화란 상호주의적 대화와 냉정한 협상과 함께 빈틈없는 경계와 방위력이 동반할 때만 지켜지기 때문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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