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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기만의 은밀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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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연 (소설가)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눅1:78∼79)

사람은 자기만의 휴식할 은밀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지친 몸과 정신이 소생의 기운에 감싸이는 자리,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 태어납니다. 제가 아는 분은 잘 다니는 병원만 가면, 그곳 외진 곳의 벤치에 아픈 삭신을 눕히고 하늘을 본다고 합니다. 죽음과 생 사이에서, 하늘 아래 티끌 같은 허망한 자신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하네요.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굳은 결의를 안고 집으로 향한다고. 죽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그곳이 그의 자기만의 장소이기도 하지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주의 옷자락이 가득한 성전에서 여섯 날개를 지닌 천사들을 만납니다. 천사들의 거룩거룩 하는 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움직이고 연기가 가득할 때, 이사야는 고백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이사야6:5). 그때 천사 하나가 붉게 달아오른 숯을 손으로 가져와 그의 입에 대자, 순간 그의 죄악은 사해져 거듭 태어납니다. 성전에서 새로 태어난 이사야는 예언자적 사명을 갖고 황폐한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집 뒷산 입구 좁다란 계곡 옆으로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은 고즈넉한 흙길엔 사계절 언제나 낙엽들이 쌓여 있습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비치는 엷은 햇살에 숲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습니다. 숲속의 좋아하는 장소에서 어른거리는 꿈과 이상…. 숲의 풍경은 사진 작가 유진스미스의 작품 '낙원에 이르는 길'을 연상시킵니다.

사진 속엔 가방을 맨 남자아이와 그 옆엔 한손에 가방을 들고 예쁜 원피스를 입은 통통한 여자 아이가 햇살 비치는 숲의 환한 길을 걸아가고 있습니다. 주위는 세상살이의 지난한 삶을 상징하듯 어둠침침합니다. 사람이 살만한 미지의 이상적인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두 아이의 뒷모습, 희망이 펄럭입니다.

벤치와 성전과 숲속의 길, 다 새로 태어나기 위한 은밀한 빛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자기만의 고요한 장소에서 변화되어 낙원을 꿈꾸며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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