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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망의 열차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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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 교수 (화가, 서울대 미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장기 입원한 적이 있다. 늦은 가을 새벽에 실려가 험한 수술을 받으며 오랫동안 퇴원하지 못한 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다. 금세 나올 줄 알았던 병원생활이 길어지면서 차츰 절망의 그림자가 병실을 덮기 시작했다. 밤 사이 누군가 하얀 시트에 덮여서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하늘은 잿빛으로 늘 흐려 있었다. 저 창에 태양이 환히 비치는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정도였다. 밤이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렸고 팔에 주렁주렁 주사바늘을 꽂고 보내야 하는 내게는 아침까지의 시간이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주사바늘 없이 아침을 맞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텐데…’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다. 그런 일상의 풍경 어디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빛 같은 것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병실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 혼자서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몰라도 의사와 간호사의 표정이 훨씬 밝아보였다. 문병을 오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표정들이 예전 같지 않게 훨씬 밝고 빛나 보였다.

‘밖에 무슨 좋은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좋은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꼭 그런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내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해가 바뀐 것일 뿐이다. 해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우울과 걱정과 한숨과 두려움의 무거운 외투를 벗어 던져버렸을 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여준 희망의 빛은 내게로 금방 감염되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벽에 새로 걸린 캘린더 속의 풍경화로 한결 산뜻해 보였다. 해가 바뀐다는 것의 의미가 그때처럼 감격스럽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아! 새해가 되었구나’ 하나님의 섭리였다. 조용히 가슴이 뛰었다. 이제 봄이면 나는 이 방을 나갈 것이다.

햇빛 쏟아지는 하얀 운동장 같은 데를 마음껏 걸어보리라. 코끝 간질이는 봄바람 마주하며 푸른 들길을 한없이 걸어보리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며 얼음 녹은 강물 흘러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리라. 몸은 여전히 꼼짝 못한 채 병실에 누워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산으로 들로 마구 헤매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새해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의 열차에 올라탄다는 것임을. 비록 막연하고 근거 없는 희망이라 할지라도 지금 앉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다는 것임을. 어둠 속에서 오지 않는 열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마침내 기적과 함께 도착한 밝은 불빛 따라 그 차에 올라타는 것임을. 그렇다. 비록 다시 어두움의 터널을 지난다 해도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해의 첫 열차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그 열차를 타기 위해.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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