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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Family of God / 엡 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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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에베소서2:11-19
Family of God 


☞본문: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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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천국 비유 중에 어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인력시장에 나가서 일군을 고용하여 포도원에 일을 시키고, 오전9시에 또 한 사람을 고용하고, 정오에 또 한 사람을, 오후3시에 또 한사람을, 오후5시에 또 한사람을 고용하여 포도원에 일을 시키고는 오후6시에 일을 마친 후 임금을 계산하는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일찍 온 사람은 당연히 불만을 토로합니다.(마태복음20:1-16) 각각 다른 양의 시간으로 일을 했는데 보수가 똑 같을 수가 있는가? 누가 봐도 뭔가 불공평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는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찍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러분들이 아침에 일찍 온 사람이라도 불만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비유는 천국 비유로서 천국은 뭔가 불공평한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내용이 틀림이 없습니다. 늦게 온 사람이야 좋겠지만, 일찍 온 사람에게는 그래도 약간의 보너스정도는 주어야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똑 같이 주었는가? 천국은 그런곳인가?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공휴일에 도배를 하는데 큰 아이는 아침부터 동참하였고, 작은아이는 약속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 점심때쯤 와서 일을 하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을 다 마치고 아버지가 두 아이를 불러다 놓고 수고했다며 똑 같이 만원씩 주었습니다. 물론 일찍부터 일한 자녀가 좀 불만을 터트릴 수는 있겠지만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렇게 준 것은 그들을 고용인으로 여긴 것이 아니고 가족이기에 용돈으로 준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를 고용인으로 혹은 일군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린다는 것을 설명하는 비유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나라에 고용된 일군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일직 믿었든, 늦게 믿었던 다 하나님의 가족들입니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족이 잘 되는데 불만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본문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속"을 영어 성경은 "Family Of God" 즉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 받은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Family of God"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형제"가 되었습니다.
  예수 님께서 제자들을 교육시키실 때 "너희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생이라 칭함을 받지말라.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23:8)고 하시므로, 하는 일로서는 선생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형제임을 말씀하십니다.
초대교회는 네 것, 내 것을 구별하지 않고 함께 나누므로 가족된 모습을 잘 나타내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개념은 분명하지만 형제됨에 대한 개념은 아주 희박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어떻게 하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리스도안에 한 형제가 되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경쟁관계, 대립적인 관계를 이루어가는 경우가 많은 사실입니다. . 
형제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 화목(和睦)인데 사실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욕설)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5:22-24)고 하시면서 화목을 크게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주안에서 형제로서 화목을 이루고 사는지 생각해보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한 형제로서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1.화목은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2:11에서 예수 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형제라고 하신 예수 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마가복음10:45에서 섬김의 삶이었고, 결국 당신의 몸을 대속제물로 내어주신 삶이었습니다.

충남예산에 가면 "이성만 효제비"가 있는데 이 비는 고려초 효자로 이름난 이성만과 이순 형제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는데, 두 형제는 부모에게 효성도 지극했지만 형제우애 또한 대단하였습니다. 국어책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추수를 끝마치고 난 두 형제는 똑 같은 생각을 하는데, 형은 동생이 아무래도 양식이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고 동생도 같은 생각을 하였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형은 자기 낟가리에서 볏단을 져다가 동생 낟가리에 갖다 쌓았고, 동생은 자기 볏단을 형의 낟가리에 갖다 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그대로인 것입니다. 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계속 반복을 하다가 어느 어스름달  밤에 두 사람이 볏짐 진 채 서로 만나게 되고, 그제서야 자기들의 낫가리가 줄어들지 않았던 이유를 알고 둘은 지게를 진 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입니다.
화목에는 반드시 섬김이 있어야지, 섬김을 받으려 할 때는 화목이 깨어집니다.


2.죄를 범하여 화목을 깨는 자에게 권고하여야 합니다.

화목을 깨는 주범은 죄이기 때문에 그냥두면 마치 상처를 그냥 두어서 더 큰 상처로 인해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듯이, 죄 짓는 자를 그냥 두면 교회 전체의 화목이 깨어질 수 있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 님은 형제가 죄를 짓거든 일흔 번 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드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에 하라고 하십니다. 죄를 짓고도 딱 잡아떼면 용서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17: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마태복음18:15-17에 보면 예수 님께서 교회 안에서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그 사람을 상대하여 권고하고, 듣지 않을 때 두 세 증인을 세워 죄를 확증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 부분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잘못한 것도 무조건 눈감아 주어야 화목이 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방치하여 교회 전체의 화목을 깨트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전체의 화목 또한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한 형제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가 있고, 인권을 침해할 수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권고해서는 안 되고, 형제의 잘못을 권고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형제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어떤 상황과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고 권고해서 본인이 잘못을 깨달아 회개케 하여 권고의 목적을 달성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는 것은, 우리가 형사나 검사들처럼 조사를 할 수도 없고,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순순히 인정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두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하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본인이 스스로 깨달아 회개하도록 성령님께서 그를 권고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스가랴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라는 것은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비는 영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회개할 마음을 주어 회개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3천명의 유대인이 성령님의 감동을 입고 예수 님을 십자가에 죽인 죄를 통회하며 자복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둘째는 권고하는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누가복음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사실 자기는 그보다 더한데 자기것은 보지 못하고 형제의 허물을 보고 지적하면 그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벽한 사람만이 권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은 문제가 없는가를 살펴본 후에 권고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형제들로 화목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형제의 의식을 가지고 화목을 이루기 위해 더욱 섬기고, 화목을 깨트리는 죄가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우리 자신들을 더욱 경건하게 가꾸어 나가십시다.

시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한 것처럼 아름다운 하나님의 가족을 만드는데 우리 모두 힘을 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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