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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패가 시작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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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 목사(동안교회)

느헤미야는 오래 전의 일이었고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구체적인 비전을 세워 불가능해 보이던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움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를 열었다. 많은 사람이 비전을 세우지만 모두 이루는 것은 아니다. 실패라는 복병을 만나게 된다. 느헤미야가 비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공동체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했다. 느헤미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아픔과 수고를 받아들였다.

평행주의(Parallelism)와 중풍, 마비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Paralysis)는 같은 어원인 ‘Para’(beside=옆에, against=반대의)에서 나왔다. 공동체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옆에 있지만 만나지 못하고 역동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서로의 능력과 마음이 마비되고 무력해져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한다.

둘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나 자기 뜻을 이루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것은 집중력과 관련, 성공 여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과 궁극적인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는 뜻이다.

느헤미야는 성을 쌓는 게 가시적인 목표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방심하지 않았고 가장 기뻐하는 순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냈다. 우리는 느헤미야서 전체에 흐르는 것은 기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과거의 실패 원인과 삶을 살펴보며 회복을 넘어 축복이라는 적극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냈다. 느헤미야는 실패의 시작이 바로 성공의 정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축복이 지속적이고 온전한 공동체의 유산이 될 수 있도록 구조적 조직적 구체적으로 삶의 규범을 생활 속에 정착시켰다. 즉 버림과 취함, 가까이함과 멀리함, 사랑함과 미워함, 비움과 채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공동체의 유산으로 이어지게 했다.

6월은 유난히 우리 민족에게 실패와 고통, 아픔의 유산이 많은 달이다. 우리는 지금 보석 같은 유산인 역사의 교훈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실패를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다시 우리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지지는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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