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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배려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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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고난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만든다. 내 코가 석자라는 생각 때문에 내 문제에만 매몰되곤 한다. 그러나 요셉은 고난 중에도 자기 중심적이지 않았다. 소통하는 삶, 관계를 맺는 삶을 살았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창40:6)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동료들의 얼굴빛을 살폈다. 그리고 고난 중에도 그들을 도왔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만 바라본다고 말한다. 진짜 믿음은 옆사람의 표정도 살필 줄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살피는 자가 되라. 돕는 자가 되라. 그것이 리더다.

나는 피란민의 아들이다. 그래서 전쟁의 참상을 여러 차례 들었다. 전쟁이 왜 무서운가?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 굶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살펴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전쟁의 절박함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버려두고 떠나야 할 때가 많다. 이같이 매정한 행동을 몇 번 반복하게 되면, 별 가책도 없이 덤덤해 진다. 타인의 필요를 저버리는 사이에 인간성은 파괴되어 가게 된다. 배려하는 삶은 인간성을 회복시킨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인간성이 깨지지 않았다. 왜?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돌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의 메마른 마음이다.

오병이어를 드린 어린 아이 부모의 가정교육이 부럽다. 기독교 명문 가정의 자녀교육이 어떠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이 아이는 무척 용의주도한 아이이다. 생각없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이 아니다. 광야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먹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도시락을 준비했다. 예상대로 상황이 전개되었다. 남들은 먹지 못해서 괴로워할 때, 보란 듯이 준비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아이였다. 아이는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져온다. 오병이어는 기적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한 아이의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메시지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의 배려하는 마음에 축복해주신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 따뜻한 인간미는 살아난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인재의 조건이 아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자녀로 키우는 것이 바른 교육이다. 언제나 주변을 살피는 인물로 키워야 한다. 요셉의 배려하는 마음이 결국 자기 자신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난 중의 배려는 자기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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