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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믿어주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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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삼일교회 목사)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못생긴 남자가 있었다. 눈도 작고, 머리카락도 없는 사람이었다. 고심 끝에 잘생긴 얼굴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10년 넘게 살았다. 나중에는 가면을 쓰지 않았는데도 그 남자의 얼굴이 가면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가면에 눌려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위장이 현실이 된 것이다. 루이스는 이것을 복음의 본질과 연결시킨다. 복음이란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간주해 주는 것이다. 별로 친하지 않아도 친한 척하면 진짜 친해진다. 별로 기쁘지 않아도 기쁜 척하면 정말 기뻐진다. 윌리엄 제이스는 같은 취지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가장하면 현실이 되곤한다.

돌이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아기가 마치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아기와 대화를 한다. 젖 많이 먹었니? 배불러? 기분 좋아?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말을 계속해 줄 때, 비로소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몰라도 알아듣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아무 대답이든 자꾸 해보는 사람이 외국어를 금방 배운다.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이 모든 것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설교자는 성도들이 모든 것을 다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힘차게 설교하면, 결국 모든 성도가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장하면 현실이 된다.

일상에서 키우는 동물중에 개가 가장 똑똑하다. 신문을 가져오기도 하고, 공을 잡기도 하고, 대소변도 가리는 개가 많다. 왜 개가 이렇게 똑똑할까? 개를 사람 취급해 줘서 그렇다. 개를 좋아하는 집에서는 개에게 옷을 입힌다. 어떤 집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자기 한 입 먹고, 개 한 입 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개가 자기 정체성의 혼돈에 빠지기도 한다. 자기가 개인지, 사람인지 구분을 못한다. 가장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종종 사람을 개취급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사람도 개같이 덤비거나, 물거나, 공격한다.

믿음이란 인식의 변화이다. 복음은 정죄, 비판이 아니다. 복음의 시각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복음은 믿어주는 능력, 기대하는 능력, 인정하는 능력이다. 부족하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믿어줘라. 믿는대로, 인정한 대로 변화된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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