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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직한 당신에게 희망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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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영 목사(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저에게 희망이라고는 안보이네요. 계속 우울한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불행한 일만 계속될 것 같네요. 휴…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살던데, 저만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얼굴빛이 초췌한 삼십 대 후반의 남성은 상담 초반부터 긴 한숨을 내쉬며 절망의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모습으로 미래의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절망적인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손에 잡힐 듯하던 미래의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던 이십 대를 지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적성에 맞진 않았지만 가족의 생계를 보장해 주었던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는 그런대로 행복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구조조정에 휘말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고 여러 달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극심한 불안이 몰려왔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실직으로 상심한 아내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고 어린 두 아이는 시골 부모님 댁으로 보내졌다. 이 남성은 다소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품으로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선량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사색을 넘어선 약간의 우울증 증세와 알 수 없는 불안 증세로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었다고 한다. 알 수 없는 불안은 현실로 나타났고 그는 순식간에 절망의 골짜기로 추락해 버린 자신을 바라보며 한없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숨 막힐 듯한 불안, 가족 전체가 안정감을 가지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과 다친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이 기질적으로 연약하고 담대하지 못한 이 남성을 절망의 끝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은 그렇게 소리 없이 스며든다. 사람들은 말한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 당연히 절망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론 연약한 우리는 쉽게 절망한다. 절망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영혼 밑바닥에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에덴동산에서의 죄악의 결말이 끔찍하게 인류에게 스며든 이래로, 희망은 애써서 죽기로 좇아야 하는 아득한 별처럼 잡기 힘들어져 버리고, 조그마한 사건에도 순식간에 절망에 빠져 버리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절망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을까. 실존적인 허무와 공허감에 시달리며 절망 속에서 불안에만 떨다가 겨우 목숨만 연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열어놓으셨고 그 희망의 빛을 바라보기를 원하신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으며 시편의 저자는 곳곳에서 내면의 절망을 진실하게 토로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사라지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선명하게 바라보았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 42편 5절)’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총 아래 거할 때, 우리가 비록 절망의 골짜기에서 허우적거릴지라도 우리는 희망의 찬란한 빛을 보게 된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더욱 크게 보인다. 물론 스스로 희망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뜰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사람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는 꿈을. 그리하여 절망에서 일어나 희망의 빛 속으로 무수히 날아오르게 된 사람들이 또다시 절망에 빠진 다른 이들을 돕는 꿈을.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 절망의 끝이 또 다른 절망으로 이어져 있다고 굳게 믿으며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나님의 빛 아래에서 그 절망을 치유받은 사람일 것이다. 절망을 치유받은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그래야 지금도 절망의 골짜기에 나뒹굴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안내할 수 있을테니까. 하나님의 빛 아래에 서면, 우리는,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가장 크고 눈부신 희망을 볼 수 있다. 주여, 우리에게 주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시편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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