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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철수와 영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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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근(연세대 교수)

내가 가르치고 있는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이 학생들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또래 집단에서 최소 상위 5%에 드는 우수한 학생들이다. 따라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 학생들은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고시에 붙어 어린 나이에 영감님 소릴 듣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학위를 취득하여 교수도 될 수 있고, 명의로 이름을 날리거나, 국회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상위 5%에 드는 이른바 SKY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아니다. 나머지 95%에 속하는 한국 사회의 평범한 ‘철수와 영희’들이 내 관심의 초점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철수와 영희는 장차 냉혹한 경제 현실 속에서 호된 시련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오히려 경제적 약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통해서 우리는 앞으로 철수와 영희가 당할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자본과 노동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의 경제권 진입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 이러한 횡포는 국가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정망을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 자녀의 경제적 안녕을 위해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의 자본 혹은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어느 젊은이가 직장생활을 해서 번 돈을 모아 서울에서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가.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녀의 미래를 보호해야겠다는 본능적 판단에 따라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비정규직보호법과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악법으로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내 밥그릇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내 자녀가 쪽박을 차게 될 것이란 본능적 판단이 오늘의 모순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땅의 철수와 영희는 결국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나 버는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다단계판매원으로 내 몰리게 될 것이다.

나는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연세대학교 학생들에게 철수와 영희를 늘 염두에 두라고 요구한다. 이미 상위 5%에 들었기 때문에 성공해서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아낌없는 비난을 퍼붓는다. 120여년 전, 어둠이 가득했던 이 땅에 복음의 빛을 들고 찾아와 기독교를 전했던 연세대학교의 설립자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엘리트는 남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약자들을 돕고 섬기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고, 너희들도 그런 삶을 살라고 요구할 때면 그래도 제법 학생들이 굳게 어금니를 깨문다. 섬김의 삶을 살겠다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 그것이 요즘 내가 강단에 서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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