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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말 바로쓰기] 종교개혁은 ‘기독교개혁’, 초대교회는 ‘초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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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운 교수(전 장신대 대학원장. 신약학 및 국어학 전공)

언어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는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잘못된 말을 쓰면서도 그 사실조차 알지 못 하는 경우가 많거니와, 만일 그러한 일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매체에까지 행해진다면 그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클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오용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시정하도록 깨우쳐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까지도 그 사실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오랜 시일이 지난 다음에는 시정하기가 더욱 어려운 단계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필자는 성서학을 전공한 사람이면서, 그러한 언어에 관심을 가지는 한 사람일 뿐 전적으로 언어학이나 국어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고,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그것도 아주 중요한 말을 잘못 쓰는 것들을 보고 답답한 마음에서 그 잘못을 바로잡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국어학을 전공한 저명한 국어학자도 많고, 영어학을 전공한 교수도 많지만 어느 한 사람도 이러한 점에 관심이 없기에, 부전공자인 필자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다.

사실은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경기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기 전에 전국적으로 도로 표지판에 영어가 잘못 쓰인 것을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무식을 보이지 않게 시정하도록 당국에 알리고 건설부 장관에게까지 권고의 글을 보낸 바 있었으나, 일부가 수용되었을 뿐 아직도 거의 시정되지 않고 있으며, 그보다도 일상용어 중에 점점 더 심각한 오용의 사례가 늘어감을 보고 이 글을 쓰는 바이다. 필자는 이 글을 써서 몇 일간신문에 게재를 부탁하였으나 언론기관에서도 무관심하여(역시 그러한 오류를 범하면서) 이제 이 지상에 공개하는 바이다. 이제 아래에 요즘 우리 사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잘못 쓰고 있는 중요한 말 몇 가지를 들어 그 잘못된 점을 해설하고자 한다.

종교개혁 16세기에 가톨릭교회의 타락과, 특별히 교황의 면죄부 발행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루터에게서 시작된 큰 개혁이 마침내 개신교를 탄생케 한 운동을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이라 일컫는데,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말이다. 이 말에 대한 영어는 ‘the Reformation’으로서, 문자 그대로 ‘개혁’이란 말이지, 거기에 ‘종교’라는 말은 전혀 없다. 이 말은 동양에서는 한자어로서 먼저 중국에서 썼고, 같은 한자를 쓰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그것을 따라 ‘종교개혁’으로 쓰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그렇게 쓸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서양에서는 그 당시 종교라면 그대로 기독교(넓은 뜻)를 의미했지만, 동양으로 말하면 불교, 유교, 도교 등 여러 종교가 있으므로 그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독교개혁’이라 함이 옳은 것이다.

초대 교회 이 말은 주로 기독교에서 많이 쓰는 말이지만, 그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는 맞지 않는 말이다. 바른 말은 ‘초기 교회’(初期敎會)다. 영어로 말하면 ‘early church’지 ‘first church’가 아니다. ‘초대’(初代)라 하면 어떤 직위의 선후를 나타내는 것이지 어떤 시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초대 대통령’, ‘2대 대통령’과 같은 경우다. ‘초대 교회’라 하면 2대 교회, 3대 교회 등을 예상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경(사도행전 제2장)에서 말하는 사도들의 교회를 나타내는 말이 못된다.

‘종군 위안부’(從軍慰安婦) 이 말은 일본인들이 일제 말기(태평양전쟁 때) 우리나라의 미혼 여성들을 징용하여 일본군의 전쟁터에까지 끌고 가서 강제로 매춘을 하게 한 것을 미화시켜서 표현하는 말로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따라서 쓸 말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그 말을 쓰면, 당시 우리나라 여성이 자원하여 일본 군인들을 위안하기 위하여 종군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 자신이 그들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 ‘부’(婦)라는 말도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말은 주로 성년 및 기혼의 여자를 일컫는 말이지 어린 처녀를 일컫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16, 17세 정도의 어린 처녀를 강제 징용하였으므로 이를 속칭 ‘처녀공출’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당시 남자 징용은 사할린(당시 ‘카라후도’(樺太)) 남양 등지로 가서 강제 노동을 했지만 처녀들은 주로 일본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채워 주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한 필자의 바른 말 대안(代案)은 ‘강제징용녀’(强制徵用女), 또는 ‘강제성징용녀’(强制性徵用女)이다. 영어로는 ‘Japanese army sex slave’(일본군 성노예)라고 쓰는데 그 말을 직역하여 쓰기에는 ‘노예’라는 말이 너무 가혹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또한 ‘정신대’(挺身隊)라는 말도 쓸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정신’(挺身)이라는 말은 무슨 일에 남보다 앞서서 자진하여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한국의 어린 처녀들 중에 한 사람도 자진해서 일본군대에 간 사람은 없었다. 이 말도 역시 일제가 자기정당화를 위하여 쓴 말인 것이다.

평가절하 이 말은 한자로는 ‘評價切下’가 아니고 ‘平價切下’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다른 사람을 낮게 평가하는 뜻으로, 즉 과소평가와 같은 뜻으로 알고 잘못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순전히 경제적인 술어로서, 고정환율에서 한 나라의 통화의 대외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로서, ‘換切下’와 같은 뜻의 말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과소평가’ 대신으로 쓰기 때문에 ‘과소평가’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상생(相生)의 정치 여기서 ‘상생’이란 말은 정치인들이 여당과 야당 간의 관계를 잘 지속해 나가자는 뜻으로 많이 써 왔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相生’의 뜻은 오행(五行)의 운행에서 금(金)은 물(水)을, 물은 나무(木)를, 나무는 불(火)을, 불은 흙(土)을, 흙은 금을 생기게 해 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바로 ‘상극’(相剋)과 대응이 되는 말로서, 상극의 뜻은 위의 다섯 가지가 그 반대로 이기는(죽이는) 것을 뜻한다. 정치인들이 여·야 당간에 서로 협력 화합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할 때는 ‘상생’이 아니고 ‘공생’(共生)이란 말을 써야 한다.

안보불감증(安保不感症) 이 말을 많은 사람이 ‘위기불감증’(危機不感症)이란 뜻으로 잘못 쓰고 있다. 이 말로 나타내는 의미는 국가 안보에 대한 의식이나 감각이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것의 이면적(裏面的)인 뜻이지 정면적(正面的)인 뜻은 되지 못 한다. 그 말이 나타내고자 하는 뜻은 안보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대한 의식이나 감각이 없다는 것이므로 그러한 뜻의 바른 표현은 ‘안보불감증’이 아니라, ‘위기불감증’인 것이다.

을사보호조약 1905년에 일본이 우리나라(당시 대한제국)를 강제로 조약을 맺게 하여 외교권과 군사권을 강탈하여 사실상 우리나라의 주권을 장악하게 된 사건을 흔히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라고 부르거니와(우리나라 국사학자들이 오랫동안 그들의 저서에 그렇게 썼다), 이 말도 ‘종군위안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이, 또 우리측 친일파들이 그것을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서 일컬은 말이므로 우리로서는 쓸 말이 못된다. 언제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요 없이 대등한 관계에서 자진하여 우리나라를 외세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조약을 한 적이 있었던가? 이것은 ‘을사늑약’(乙巳勒約, 통치권을 늑탈한 조약)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일합방 위의 경우와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1910년의 소위 ‘한일합방’(韓日合邦)이란 말도 우리가 쓰는 말로는 합당한 말이 못된다. 왜냐하면 조약이란 국가 간에 대등한 지위와 권력으로 체결되는 것인데, 이 경우는 전적으로 일본측의 강압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도 우리로서는 ‘강제’라는 말을 넣어 ‘한일 강제합방’이라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동아전쟁 아직도 많은 사람들(주로 70-80대의 노령 층)이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자행했던 소위 ‘태평양전쟁’을 당시 일제가 부르는 말을 따라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가 쓸 말은 아니다. 일제는 당시 서구의 몇 강대국이 동양 제국으로 세력을 확장해 오는 소위 서세동점(西勢東漸)을 대동단결하여 막고 동아시아 제국이 함께 번영하는 소위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이루기 위한 전쟁이라고 자칭한 것이다. 이 말의 뒤에 숨은 일본의 속셈은 물론 일본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를 자기의 지배 아래 두고자 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해방과 광복 이 두 말은 똑같은 말이 아니므로 엄밀하게는 구별해서 써야 한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미·영연합군에 항복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이 되었는데, 이것은 소극적(수동적)인 면에서 말하는 것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가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되찾게 된 ‘광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8월 15일을 ‘해방절’이라 하지 않고 ‘광복절’이라 부르고, 그러한 뜻으로 기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상해에 있는 우리 임시정부도 광복군을 조직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싸웠던 것이다.

독립기념관 이 말도 사실은 합당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수천 년의 역사 가운데서 때로 외세(주로 명 청 등 중국)의 간섭을 받은 적은 있으나, 독립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마치 역사상 처음으로 일제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것처럼 ‘독립기념관’이라 한 것은 합당치 않다. 따라서 이 기념관 건물의 명칭도 ‘광복기념관’으로 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동방예의지국 이 말도 많은 사람들이 동방의 ‘禮儀之國’ 즉 동방에 있는 예절을 잘 지키는 나라란 뜻으로 알고 있는데, 그 한자 표기는 ‘禮儀之國’이 아니고 ‘禮義之國’이다. 여기서 ‘禮儀’는 인간 간에 지키는 예절을 말하는데 대해, ‘禮義’는 ‘예절’과 ‘충의’(忠義) 즉 임금에 대한 충절(왕정시대가 아닌 지금으로 말하면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의지국’(禮義之國)이라 함은 인각간의 예절을 잘 지키고 임금에게 충의를 다 하는 나라 즉 충효를 다 실천하는 나라란 뜻이다.

일제 36년 간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일제의 통치를 받은 기간을 ‘36년간’이라고 많이 써왔다. 3·1절이나 광복절 행사에서 정부요인들의 경축사에서도 그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 말은 옳지 않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합방한 날은 1910년 8월 29일이요,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은 1945년 8월 15일이므로 정확하게 말하면 34년 11개월 14일로서 35년에도 2주간이 모자라는 기간이다. 이 수모(受侮)의 통치기간을 우리가 어찌 1년을 늘려서 쓸 필요가 있는가. 바른 말로는 ‘일제 35년간’이라 해야 한다. (계속)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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