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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설교자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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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규 목사(인천내리교회)

좋은 설교는 무엇일까? 첫째,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기독교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초점이 되어야 한다. 루터는 성서를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말구유와 같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품는 설교는 당연히 성서적이어야 한다. 성경 본문을 읽기만 한 채 윤리 교훈만 역설할 경우 불교의 설법이나 이슬람, 유대교의 설교와 다를 바 없다. 둘째,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시대의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인정할 수 있는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 설교가 선포되는 특수한 상황에 적합해야 한다. 회중들의 연령, 성비, 교육 및 경제 수준, 사회 심리학적 위치, 특별한 필요성 등 삶의 자리를 철저히 분석해 그 회중의 평균인들이 처한 상황에 적절한 방식으로 설교해야 한다. 넷째, 회중들의 삶에 변화와 충격을 줄 수 있도록 감동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 세 가지는 인간이 준비해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넷째는 그렇지 않다. 고매한 인격과 뜨거운 기도, 성령의 역사가 따라야 한다.

현란한 말솜씨, 연예인 저리 가라는 무대 매너와 패션, 뛰어난 재담, 예리한 통찰력, 탁월한 성서 해석, 일세를 풍미하는 대설교가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다고, 설교자의 자랑과 능력만 부각되거나 사람 듣기만 좋을 뿐 그리스도 예수가 빠진 설교가 적지 않다.

미국 목사들이 영국의 조지프 파커 목사가 시무하는 시티 템플 교회를 방문해 설교를 들었다. 사람들은 너나 없이 명설교가라고 입이 마르도록 극찬했다. 그날 밤 그들은 스펄전이 설교하는 메트로폴리턴 테버나클 교회로 이동했다. 교회 건물도 훨씬 더 컸고 교인 수도 배나 많았다. 스펄전의 목소리와 웅변술은 단연 당대 최고였다. 그러나 그의 설교가 진행될수록 예배당의 웅장함이나 교인 수, 설교자의 목소리, 제스처, 의상 따위는 뒤로 밀려났다. 드디어 예배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기뻐 외쳤다. "예수님은 정말 위대한 구주이셔!"

인터넷과 TV에 등장하는 자타칭 최고의 설교자들이 뼈아프게 고뇌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혹여 나르시시즘에 빠져 내 말솜씨, 깨달음, 용모, 지식만 잔뜩 과시하고 사람들의 이목이나 즐겁게 하고 내려오지 않았는지. 그리하여 주인공인 그리스도는 언제나 설교자의 인기와 영광에 파묻혀버리지는 않았는지. 설교가 끝났을 때 설교자의 모든 것은 잊고 그리스도만 기억나게 하는 설교자,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함이 내내 괴롭다. "그러기에 칭찬을 좋아하는 자는 자기 개인의 우수성을 내세우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거지가 동냥을 구하듯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구걸하고 수집합니다."(어거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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