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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품격 높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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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에 대한 다양한 희망들이 분출하고 있다. 새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품격 높은 국가라는 희망의 미래를 향해 함께 전진할 것을 호소했다. 다 옳은 이야기이고 마땅한 담론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요구와 희망사항들을 실현하여 이상사회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임을 알고 있고, 또는 어느 정도의 시도와 초기 성과로만 자위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품격 높은 모습을 갖추어야 함은 누구나 절실히 느끼고 있다. 품격 높은 사회는 모두가 느끼기에 좋은 사회여야 한다. 히브리어로 좋다는 뜻을 지닌 단어가 토브(tov)다. 이 말은 아름다움과 도덕적 선 그리고 기능적 탁월함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좋은 사회는 이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추어야 한다. 즉 근본이 우수해야 한다. 지금처럼 천민자본주의에 함몰되어 있거나 사회의 도덕성이 손상되고 국가기관과 사회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역기능을 행사하면 결코 품격 높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좋은 교회로 평가되려면 이런 요소들에 주목해야 한다. 아주 초보적이고 근본적인 부분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야 한다.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하는 근본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이 되고 세속적 이기주의에 물들면 이는 이미 추함을 배태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교회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제자 공동체들임을 망각해서도 안된다. 세상이 그들의 방법과 힘으로 우리를 비난한다 하여 같은 용어로 세상을 비난하거나 눈을 눈으로 갚는 졸렬함을 보여선 안된다. 저주하고 욕하는 자들의 용서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기도하시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잊고서는 우리의 품격을 유지할 수 없다. 다수의 힘과 물질의 도움으로 세상을 압도하는데서 교회의 품위와 영광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끝 없이 본받을 때 진실한 가치를 지닌 위엄 있는 교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 새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고 권력에 편승, 국면전환을 시도하거나 세속정치사에 일일이 개입하여 마치 교회가 이해집단이나 관변단체인 것 같은 인상을 심는 것은 지극히 비신앙적이고 우리 모두를 부끄럽고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신앙의 기본 원리에 충실하고 추상 같은 가르침으로 세상을 꾸짖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고도의 도덕성과 감동적 희생의 모습을 가질 때 교회는 스스로의 품격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고품격 사회로 가자는 이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 자기를 살펴 우리의 본질을 회복함으로써 누구도 쉽게 폄훼할 수 없는 영적 위엄으로 가득한 교회공동체를 건설해 가야 한다. 루터는 '믿음에서 나오는 박애심으로 세상을 섬기고 세상의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본질이다'라고 했다. 기도와 묵상으로 보내는 사순절이 그의 말을 깊이 음미할 필요를 크게 느끼는 계절임을 다시 실감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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