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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김성수 창작소설> 새벽의 살인 -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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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생활 10년 동안 여러 차례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해 봤지만 이번 사건만큼 특이한 사건은 처음이다.
왜 범인은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손아귀에 100원 짜리 동전 하나를 쥐어놓고 가는 것일까. 범죄자의 심리 중 첫 번째 원칙이 "들키지 말아야 한다"인데 이 범인은 그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동일한 단서를 남겨놓고 갔다. 첫 번째 사건은 은행원 김진후, 두 번째 사건은 오락실 주인 박정필. 그리고 세 번째 버스기사 최씨의 살인사건이 터진 직후 내가 윤형사의 전화를 받은 건 오랜 고통과 굶주림에 지친 늑대가 회포를 풀 듯 아내와의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잠이든 새벽이었다. 내가 비번이었다면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 무슨 일이야? "

창에 새겨진 발신자 번호로 난 그가 윤형사임을 알 수 있었다.

" 세 번째 사건입니다. 동일범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

윤형사의 다급한 목소리에서 난 지금 그가 차를 운전하고 있고 핸즈프리로 전화를 하고 있으며, 옆좌석에는 반장이 동행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어라 해야 할까. 형사들 끼리만 통하는 느낌이랄까.

" 또 동전 하나 남겨두고 갔나? "
" 관할 파출소 순경의 연락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
" 이런.. 제기랄... "
" 사건 현장은 S여객 종점 주차장입니다. "
" 알았어, 금방 갈게. "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사건 현장을 얘기하는걸 보니 옆좌석에 앉은 반장의 눈초리가 뜨거운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쇄 살인 사건이 동일한 수법으로 그것도 세 번씩이나 일어났는데 사건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서장의 불호령을 들었을 것임이 뻔하다. 도대체 범인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하긴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경우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그런 범행을 저지르는 놈들은 극히 드물다. 연쇄살인은 단순히 살인행위 자체에만 중독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 행위는 절차를 중시하는 일종의 종교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고, 자기 자신의 생존을 지탱해 주는 중심축이 된다. 면밀한 사전 조사와 준비, 납치와 고문, 살해와 시체 유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들을 마치 악마에게 제물을 바치는 종교 의식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반복한다.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대게 여기서 발견한다. 이런 종교 의식적 행위가 연쇄 살인범죄자를 규정하는 근거가 되고 이것은 연쇄살인범이 무작정 사람만 죽이는 여타 살인범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뒤로한 채 집을 나와 언덕을 성급히 뛰어내려가서는 신호등 앞에 대기해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이른 새벽에 택시를 빨리 잡는 하나의 요령이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새벽 5시를 조금 넘긴 시간. 김성철에서 강력 1반 김형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름이라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구경꾼들은 별로 없었지만 첫차를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이 복잡하게 몰려 있었다. 구경꾼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먹이를 발견한 것 마냥 모여드는 개미떼 같은 그들은 형사들에게 골치 덩어리 2순위에 해당하는 존재들이다.  

" 오셨습니까? "

윤형사는 내 손목을 급히 잡더니 도열하듯 주차해 있는 버스들 뒤로 숨어들었다. 반장의 눈을 피하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 제가 왜 이러는지 아시죠? 화산 폭발했습니다. 그나마 이번 사건은 좀 다른 점이 있어서 그 화가 누그러졌어요. "
화산 폭발이란 반장의 화가 극도에 이르렀을 때 써먹는 말이었다.

" 뭐 특이한 점이라도 발견했나?  "
침착한 어조로 내가 물었다.    

"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동일범의 소행입니다. 피해자는 버스기사 최씨. 역시  오른손에 동전 하나가 쥐어져 있었구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과 틀린 점이 있다면 범인이 피해자를 칼로 찌른 뒤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리쳤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피해자가 칼에 찔린 채 죽어가면서도 저항한 것 같아요. 감식반이 지금 쇠파이프에서 지문 채취하고 있으니까 곧 감식 결과 나올 겁니다. "

" 알았어, 계속 수고해. "

윤형사를 보낸 뒤 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범인이 바로 그랬다. 하얗게 피어오르다 공기 중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리는 연기처럼. 지금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쇠파이프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갑작스런 피해자의 저항에 범인도 당황했을 터. 급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계획에 없었던 쇠파이프를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담배를 끄고 버스 앞으로 나갔을 때 반장이 나를 노려보듯 강한 눈길을 주고 있었다.

"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들어가서 좀 쉬시지요. "

화산의 폭발을 막을 수 없다면 그 터져 오르는 화산을 바다로 흘러가게 해 응고시키는 것이 최대한의 방편일 것이라 생각했다.    

" 이미 사건은 장기화 됐어. 사건 종결될 때까지 집에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마! 빨리 상황 파악하고 들어가서 보고서나 써. "

난 답변 대신 담배를 한가치를 꺼내 반장에게 내밀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반장에게 담배를 권하는 것은 알았다는 대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 서둘러. 구경꾼들 몰리기 전에 얼른 현장 폐쇄하는게 좋아. 더군다나 여기 종점은 역전 앞이야. 보다시피 번화가라구. 무슨 말인지 알아 몰라?! "

" ....예, 알겠습니다."

현장 주변을 한번 둘러본 후 난 대답했다. 형사 경력 10년 차의 나에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은 괜한 짜증이며 잔소리다. 하지만 역시 반장에게도 구경꾼들은 골치 덩어리일 것이다. 난 현장 사진을 찍고 있는 윤형사를 불렀다.

" 앰뷸런스 불러서 시체 싣고 현장 폐쇄한 다음 얼른 여기 뜨자구. "

윤형사가 답변하기도 전에 난 피투성이가 된 채 엎어져 있는 시체 앞으로 가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동전을 증거 수집용 봉투에 집어넣었다. 벌써 세 번째 동전이다. 첫 번째는 은행원 김진후에게서, 두 번째는 오락실 주인 박정필에게서. 봉투를 감식반에 넘긴 뒤 난 쇠파이프로 얻어맞은 피해자의 머리를 육안으로 살폈다. 상처 주위엔 머리카락과 피가 뒤엉킨 채 굳어 있었다.
이번 사건의 단서는 쇠파이프와 동전. 하지만 쇠파이프는 단서라기 보다 오히려 수사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범인이 쇠파이프를 사용해야 했을 정도로 피해자가 저항했다면 범인은 분명히 당황했을 것이었다.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범죄자의 심리가 작용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된 범죄를 저지르다 그 계획에 어긋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범인은 본능적으로 도망치게 되어있다. 바로 이것이 수사의 혼란을 가져오는 문제점이다. 범인이 피해자의 손에 동전을 쥐어놓는 것은 피해자의 죽음을 확인한 다음일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강하게 저항했고 그래서 범인은 계획에 없었던 쇠파이프를 사용했을 것인데 그렇다면 범인은 그런 돌발 상황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침착했단 말인가?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윤형사! "
난 감식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윤형사를 다시 불렀다.

" 감식반 일 다 끝났으면 시체 싣고 출발하고 그만 현장 폐쇄해. "

" 예, 근데 최씨를 발견한 최초 목격자 박기사는 어떻게 할까요? 제 생각에는 일단 참고인으로 받을까 하는데... "
이제야 제법 윤형사는 신참티를 벗어내는 것 같았다.

" 그렇게 해. 단, 쇠파이프에서 지문 감식 결과 나오면 피의자 신문조서 받는거 잊지마. 장사 하루 이틀 하는거 아니잖아? "

" 바가지 쓸 일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

엠뷸런스가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난 윤형사와 함께 서로 향했다. 금새 불어난 구경꾼들로 인해 사이렌을 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저 골개미들 하여간! "

윤형사는 연신 경적을 울려댔다. 그래도 그들은 쉽게 비켜서서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골개미라는 말은 구경꾼들을 비하하는 용어였다. 사람을 보고서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집 안에서 들끓는 '골치 아픈 개미'들을 줄인 말인데 누가 만든 말인지 꽤 그럴 듯 했다. 사건이 하나하나 터질 때마다 난 구경꾼들을 보며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한다. 저들은 왜 사건 현장에 모여드는 것일까. 구경꾼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는 여지없이 인질극이 벌어질 때다. 인질극이 터진 날이면 구경꾼들은 길거리고 창문이고 심지어는 옥상 위에 올라가서 까지 흥행 영화를 보듯 한다. 자신의 가족과 친지들이 그 인질 중에 한 명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또한 자신의 어머니나 자식이 그 인질범의 손아귀에 갇혀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뼈를 깍는 듯한 마음의 고통에 빠져 실신상태에 까지 이를 것이다. 하지만 그 인질의 가족들에 대한 고통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은 공짜로 흥행영화 보듯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들에겐 관람의 재미와 스릴만이 있을 뿐 타인의 입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인질극 보다 더 잔인한 살인 중에 하나 일 것이라는 생각. 내가 골개미들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었다.



2회 예고)

김형사는 최초 목격자인 버스기사 박씨를 미행한 후
위장을 한채 사건 장소에 다시 잠복한다. 과연 단서를 찾을수 있을것인가...



< 2회에서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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