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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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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목사 (염암교회)

운전중에 휴대폰을 받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사고날 위험이 크게 마련이다.
운전중에는 운전이 본질이며, 전화통화는 비본질이다.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운전이 우선이다.

이와같이, 영적인 세계도 다르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덜 중요한 것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지금, 재정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다.
아니면 건강을 위하여, 철야하며 매달릴 수도 있다.
아니면 배우자나 직장문제를 놓고, 노심초사 안달할 수도 있다.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것들이 덜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할 수도 있다.

바울에게는, 엄청난 주의 능력이 함께 했다.
손수건을 아픈자에게 대면
병고침이 일어났으며 손을 얹어 안수하면 갖가지 은사가 임했다.
뿐만아니라 바울의 사역은 가는곳마다, 부흥과 성장을 경험할 정도로 놀라웠다.

그뿐인가?
바울은 삼층천을 다녀오는 신령한 체험을 했다.
그럼에도 바울의 관심과 촛점은, '그리스도 그분'이었다.
바울이 집중하는 것은, 일이나 체험이나 능력이나 축복이 아니라
'예수 그 이름'이었다.
그리고 바울의 평생 자랑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는 비본질에 집중하다가,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수님의 능력이나, 일이나, 축복이나, 응답에 집착하다 보면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두 가지를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광풍을 가라앉게도 할 수 있지만, 광풍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믿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푸른초장으로 바꾸게 하기도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안식을 갖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다.
믿음은, 죽을 병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죽을 병을 가지고도
그리스도와 관계를 투명하게 하여, 평정을 갖게하는 에너지이다.

사단은 우리의 본질을 놓치는 대신에, 비본질을 소유하도록 도와준다.
뿐만아니라, 비본질에 집착하는데, 우리의 감정과 환경을 사용한다.
예를들어, 우리에게 엄청난 재난이나, 시련이 다가왔다고 생각하자.
그때 우리의 감정은 요동친다.
'어떻게 하지' '이제 어쩌지' '큰일 났네'
이렇게 감정에 동의를 하고, 감정이 충동하는 대로 순종한다.
그리고는 도울 사람이나, 인간적인 방법들을 생각해 낸다.

그런후에는, 부정적인 상황앞에 절망하게 된다.
이때쯤 되어서야 '주님 어디 계시는가?'두리번 거리며 찾게 된다.
그러나 이미 사단은, 당신의 감정과 생각을 초토화 시킨후이다.
그 증거로 우리안에는, 평정도 안식도 흔적조차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일은, 본질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본질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 그 보상으로 세상이 줄수 없는
평안과 안식을 허락하신다.

오늘도 사단은,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고 있다.
반면에 성령은, 우리를 말씀으로 장악하려 하신다.
우리는 순간 순간, 감정에 동의함으로 비본질에 충실할것인지
아니면 말씀에 순종함으로, 본질을 붙잡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요동치 않을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으로는, 벌써 여러가지 인간적인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방법을, 더 신뢰하고 만다.
입술로는 '주여 믿습니다' '내가 주를 신뢰하며 이 문제들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하면서도 마음에는, 불안과 안달함으로 평온을 잃고 만다.
전인격적인 신뢰와 믿음에, 실패한 증거이다.

우리가 본질에 충실하다는 말은
모든 일을 전폭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집중시킴으로, 비본질을 내려 놓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하면 그리스도로 충만함으로, 인간적인 안달함이나 궁리를 멈추는 것이다.
즉 운전에 충실하기 위하여, 핸드폰을 잠시 꺼두는 상태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휴대폰을 켜둔 이상, 충분히 필요할때는 사용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전중에 껌을 씹거나, 음악을 듣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운전자에게 있어서는, 비본질에 불과할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믿음에 충실하려고 한다면
축복이나, 응답이나, 형통이나, 은사에 집중하거나 집착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아무리 귀하다고 하여도, 주님을 대신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 이 모든 것들을 담아 두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가 우선순위 될때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들을 얹어 놓으신다.
흐르고, 누르고, 넘치도록 말이다.

휴대폰 통화는 운전을 마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된다.
그렇지않을때, 위험한 사고를 만날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거꾸로 가는 시대라 하지만
비본질이 본질을 대신하거나, 우선순위에 있어서 앞설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된다면 우리의 영적상태는, 깊은 공황과 황무함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평생을 사모하고, 추구하고, 기대하고, 신뢰해야 할 최고의 본질이다.
그분안에는 모자람도, 부족함도, 궁핍함도, 없으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왕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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