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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청과 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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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담임)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힘든 것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처럼 힘들고 재미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자기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경청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자기만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도청에는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은밀한 부분들을 알고 싶고, 그것을 통해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숨겨진 본성인 것 같습니다.

실례를 들면, 1924년부터 72년까지 FBI 국장을 지낸 에드거 후버는 권력을 이용해 50년에 걸쳐 도청을 즐겼습니다. 거기서 얻은 ‘비밀파일’을 이용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는데, 1960년대 중반 흑인 인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약점을 잡아내 ‘자살하지 않으면 테이프를 공개하겠다’는 협박편지를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작년부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비난을 받은 것도 안기부 도청 파일을 통해 97년 대선자금을 불법적으로 전달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도청을 통해 사람들 안에 감춰져 있던 인격과 사생활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겉사람은 신사처럼 보였던 사람이 속사람은 추하고 더러운 악마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마다 그 타락의 정도가 크고 작을 뿐이지 성경의 말씀처럼 인간은 다 부패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경청과 도청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경청과 도청은 사랑과 미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한다는 말인데, 한자로 들을 청(聽)자를 살펴보면 상대를 왕처럼 생각하여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청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청한다는 것은 상대의 약점을 잡아내서 그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기에 미움의 증거가 됩니다.

둘째로 경청과 도청은 신뢰와 의심을 나타냅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귀 기울여 듣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청과 도청은 하나님과 마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말에 늘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경청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 경청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인간을 참소하기 위해 도청을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의 은밀한 말까지 다 엿듣고는 정죄하며, 참소합니다. 마귀가 욥을 참소한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고소할 거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떳떳한 사람은 누가 보든 안 보든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다니엘은 바사의 방백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고소할 거리를 찾고자 했으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흠이 없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말을 경청하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누가 도청을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요한 목사

- 연세대학 연합신학대학원
-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 풀러 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 칼빈신학대학원 철학박사(Ph. D)과정
- 안드레 신학교 이사장
- 비라카미 신학교 명예학장
- 국제사랑선교회 회장
- 분당 남서울비전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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