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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00만명에 한 명인 사람 (민 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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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승이 자기 제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제자가 반가워서 뜯어 보았더니 "사람,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이라고 사람이라는 말만 5번 적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해석하려고 하여도 해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가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대답하기를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다운 사람이라야 사람이지"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200만 명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할 때였습니다.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 정탐을 위하여 보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정탐꾼을 파송할 때에 이런 뒷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탐꾼을 보내어 모든 정보를 알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론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팽배하였습니다. 이런 여론에 모세는 놀랐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말했습니다. "정탐꾼을 보내려고 하느냐?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분명히 저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무가내로 정탐꾼을 꼭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 물어 보고하겠다고 성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모세야! 백성들이 정탐꾼을 보내자고 하는데 너도 동의하느냐" 모세가 "하나님! 나는 하나님께서 저 땅을 주신다고 하셨기에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탐꾼을 보내지 않아도 하나님은 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모세의 대답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보내라." 그래서 12지파에서 한 명씩을 선택하였습니다. 레위 지파만은 정탐꾼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지파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탐꾼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40일간 정탐한 정탐꾼들은 BC 2449년 아브월 8일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12명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명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 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왔는데 여호수아와 갈렙 두명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100만 명에 한 명인 사람입니다. 특별한 사람입니다. 두 명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1. 꿈을 보았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같이 떠나 같이 다니며 같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같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10명은 가지 말자고 하였고, 2명은 가자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정반대의 말을 하게 하였을까요? 다름 아닌 꿈의 차이였습니다. 10명은 꿈이 없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서 노예로 살던가, 광야에서 살던가였습니다. 노예가 무슨 꿈이 있습니까? 광야에서 무슨 꿈이 있습니까? 그러나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7 거민들은 강한 사람들입니다. 전쟁하면 질 것 같은 감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가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2명은 달랐습니다.
성이 견고하였습니다. 아낙 자손이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10명과 다른 점은 꿈이 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새롭게 민족을 형성할 땅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땅이었습니다. 과거 430년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으나 이제 해방되어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꿈을 보았습니다.

더구나 분명한 꿈은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꿈이었습니다(창15:12-16).
아브라함이 되기 전에 아브람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① 정말 이방의 객이 되었습니다. ② 400년만에 풀려 나왔습니다. ③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애굽을 징치하셨습니다. ④ 큰 재물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⑤ 아브람이 평안히 조상에게 돌아가 장사 지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예언 하나는 '이 땅으로 돌아 오리라'는 말씀 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5가지가 이루어졌고 한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 한가지를 믿을 수 없겠습니까? 그래서 두명은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꿈을 향하여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한국 신학대학을 졸업하면서 교문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교문을 나선 사람 중에 가장 큰 교회를 이루는 목회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지 35년만에 기장에서는 가장 큰 교회를 이루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꿈을 가진 사람은 특별한 일을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꿈 때문에 가자고 외쳤습니다. 200만명 중에 두 명이었습니다. 100만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토마스 에드워드는 영국 청교도 혁명기 때에 성직자로서 큰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입니다. 그는 1627년 날카로운 비판으로 당국에 체포되어 투옥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하여 3일간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꼬박 기도하였습니다. "제게 뉴잉글랜드를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강대상에 올라갔을 때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들은 그가 말도 하기 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꿈은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큰 축복속에 살았습니다. 실로 남과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동행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10명의 보고를 듣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울며 통곡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그냥 외친 것이 아니라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민14:6-9). 두 명이 가자고 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런 믿음이었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못 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계시는 데 무엇이 두려웠겠습니까? 100만 명의 한 사람이 된 비결이 있습니다.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리빙스턴이 선교사로 떠날 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다른 한 선교사가 찾아와서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리빙스턴은 대답하였습니다.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도 좋다" 리빙스턴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동행하여 주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100만명 중에 한 사람이 됩니다.

3. 미래를 보았습니다.
두 명의 정탐꾼은 어제를 본 것이 아니라 내일을 보았습니다. 애굽을 본 것이 아니라 가나안을 보았습니다. 땅을 본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았습니다. 지금 200만 명이 다 광야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가나안을 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메시야를 보내 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게 됩니다.

오늘은 고생스러워도 내일을 건설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자고 하였습니다. 10명 말을 들으면 지금은 편하고 후손은 애굽으로 돌아가면 다시 노예이고 광야에서 생활하면 유목민이 됩니다. 그러나 두 명의 말을 듣고 가나안으로 가면 1세들은 고통이지만 자손들이 축복 속에 살게 됩니다. 편안한 오늘보다 고생스러운 내일을 택하는 이가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100만 명에 한 명이 되려면 미래지향적이 되어야 합니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느 정도인지 가르쳐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자력에 이용하는 핵원료인 라듐의 모체가 되는 우라늄에 대하여 1945년에 쓴 영어 사전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아무 쓸모가 없는 희고 무거운 금속"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우라늄이야 말로 원자핵 분열을 일으키는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핵원료이며 이 우라늄의 발견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발견이라고 고쳐 쓰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바뀝니다. 달라집니다. 그 날 좋도록 오늘 고생스러워야 합니다. 그래야 100만 명 중에 한 명이 됩니다.

어미 원숭이가 두 마리의 새끼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편애하였습니다. 한 마리는 늘 품에 안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른 새끼는 제대로 돌보지 않고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원숭이는 혼자서 다니면서 먹이를 자급자족하였고,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새끼는 늘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에 겨워 어머니 품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느날 다른 지역의 원숭이들이 급습하였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사랑하는 새끼 원숭이를 안고 이 나무 저 나무로 돌아 다녔습니다. 나중에 보니 새끼 원숭이는 숨막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혼자 살던 원숭이는 자기 할 일 자기가 알아서 하면서 숨어 있다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과보호는 비극입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 고생스럽게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100만 명 중에 하나가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200만 명 중에 두 명입니다. 100만 명 중에 한 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꿈이 달랐습니다.
(강 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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