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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00배의 결실을 얻는 삶 (눅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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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믿는 사람들 중에 깊은 영적인 체험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깊은 영적인 체험을 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깊은 영적인 체험만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무엇인지,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신앙은 열매가 없는 허무한 신앙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신앙이 열매 맺는 신앙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교훈해 주는 본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한 동네에 가셨을 때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이 여러 의도를 가지고 나온 것을 알고 그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어느 날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씨를 뿌리는 사람은 좋은 밭에 씨를 뿌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5절). 그러니까 싹이 나기도 전에 밟히고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습니다. 길가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사람 많은 곳은 마귀의 유혹도 많은 곳입니다. 여러분! 군중 좋아하지 말고, 인기 좋아하지 말고, 스타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휩쓸리다 보면 영혼이 밟히고, 영혼이 마귀에게 먹힐 수 있습니다.

어떤 씨는 바위 위에 떨어졌습니다(6절). 그래서 바위가 따뜻하니까 금방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니까 다시 금방 말랐습니다. 금방 좋았다가 다시 금방 식었다가 하는 감정적인 신앙생활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멋진 것을 좋아하지 말고, 외모를 좋아하지 말고, 너무 분위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신앙이 미지근하게 될 수 있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의 가장 큰 맹점이 무엇입니까? 습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다'고 합니다. 눈물이 없는 신앙! 그것은 불행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눈물, 헌신의 눈물, 십자가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고, 어떤 시험이 닥치고 고난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떤 씨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졌습니다(7절). 그래서 가시와 함께 같이 자랍니다. 그러니까 상당 기간 잘 자라는 듯 하다가 결실을 할 때쯤 가시 때문에 기운이 막혀 결실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가시가 무엇입니까? 14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3가지, 즉 염려와 재리(돈)와 일락(일시적 쾌락)이라고 합니다. 초신자 시절 막 신앙의 싹이 나서 영적인 키가 작을 때에는 가시떨기가 약간 햇빛은 가리고 영양분은 갉아먹어도 성장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인 키가 자라려고 하면 이제 이 3가지가 가시가 되어 영혼을 찌르게 되고, 결국 열매를 얻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항상 이 3가지, 즉 '부정적인 생각'과 '나눔에 인색한 삶'과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신앙의 높은 고지와 깊은 경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씨는 씨를 뿌리는 자가 목적한 대로 좋은 땅에 떨어져서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8절). 그러면 좋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한 주님의 설명이 15절에 간단히 나와있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살면서 백 배의 결실을 얻는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백 배의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15절 말씀을 보면 3가지가 필요합니다.

1. 첫째,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란 단순히 좋은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독교인의 큰 과제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깊은 영적인 체험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은 좋은 사람, 요새 사람들은 '나이스(nice)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나이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이스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친절하고, 사려 깊고, 남의 입장을 배려하고 남을 높여줄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나이스 하다는 것은 자기를 희생할 줄 알고, 관대한 것입니다. 또한 나이스 하다는 것은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고, 적절한 유머도 있고, 미소와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넘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라면 이런 나이스한 마음과 태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하게 만날 때 우리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에스겔 36장 26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이 임하면 반드시 나이스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30-3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나이스한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그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이스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나이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나이스한 태도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무 쉽게 불평하고, 너무 쉽게 분노합니다. 조금만 금전적으로 손해가 날 것 같으면 부모형제도 눈에 보이지 않고,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아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떼를 부리면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얼마나 심하면 어떤 분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헌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말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조금 금전적으로 손해가 되고, 내게 손해가 된다고 할지라도 나이스한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믿는 사람들도 나이스한 태도를 많이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올곧고, 너무 엄격합니다. 그래서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비판을 잘하고, 항상 부정적이고, 언어가 날카롭고, 사람들에 대해 인내심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기피대상이 되지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이스한 사람이 되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나이스한 행동은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행동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식사 전에 기도하고 식당 종업원에게는 무례하게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미국에서는 팁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팁은 놓지 않고 동전 몇 개만 남겨두고, 심지어는 팁 대신 전도지를 남겨두면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믿는 하나님을 누가 믿고 싶겠습니까? 야고보서 2장 14-19절을 보면 '구원받아라!'고 하면서 팁도 안 놓고 사랑의 리퀘스트를 무시하는 모습을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행동을 분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의 실제적 헌신은 보여주지 않고 말하는 것만 좋아하고 판단하는 것만 좋아하는 저급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탈레반이 아니라 천국 백성이고, 사랑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권리보다는 책임을 먼저 생각하고, 전체를 생각하고, 보다 크고 넓게 생각하고, 나도 생각하지만 남도 생각할 줄 아는 나이스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끔 예배드릴 때 실수로 핸드폰을 켜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소리가 울리면 유익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졸다가 그 소리 때문에 깨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예배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서 사려 깊게 핸드폰 끄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도 나이스한 마음입니다. 가끔 예배를 드리는데 벌레가 눈앞에 어른거릴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납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두 손바닥으로 '딱!' 소리를 내며 벌레를 잡습니다. 그러면 벌레 잡다가 하나님 말씀까지 잡습니다. 그 소리에 조는 사람도 깨긴 하지만 저의 설교 흐름도 깨지고, 예배 분위기도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고 가만히 참거나 조용히 벌레를 쫓아내려는 마음도 나이스한 마음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벌이 와서 얼굴을 쏴도 요동하지 않고 말씀에 집중하는 마음이 진짜 예배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새벽기도에 매일 같이 기도하시는 권사님을 기도 동역자로 보내주셨습니다. 그 권사님들은 새벽에 나오지 못하게 되면 미리 저에게 말을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도 목회자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하는 나이스한 마음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지금 현재 교회에 무엇이 시급하게 필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며 그 필요를 채우려고 하는데 그 마음도 참으로 나이스한 마음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약속을 잘 지킴으로 지켜집니다. 예배 시간도 약속이고, 성가대 연습 시간도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힘써 지키려는 마음도 나이스한 마음입니다. 내가 늦으면 성가대 지휘하는 분이 얼마나 속이 상할까 생각하고 시간이 잘 지키려는 마음도 나이스한 마음이고, 찬양하면서 내 원하는 대로 부르고 싶지만 그래도 지휘자의 지휘에 최대한 맞추려는 마음도 나이스한 마음입니다.

그처럼 같이 보조를 맞출 줄 아는 마음이 교회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혼자 충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사람이 보이면 헌신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말고, 그런 마음이 들 때에는 내가 너무 앞서는 것이 아닌가 자성하고, 반대로 충성하는 사람이 보이면 너무 앞서는 것 아니냐고 흉보지 않고,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스스로 내가 헌신이 부족하지 않은가 자성하는 마음이 나이스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같이 손을 잡고 기도하고, 같이 손을 잡고 봉사하는 나이스한 마음을 가지면 주님도 반드시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나이스한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중요한 내용은 우리의 성향이 나이스하게 변화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처럼 나이스한 마음을 가지면 우리는 반드시 축복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2. 둘째,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핵심 원리를 잊어버리고 이상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이상한 곳에서 축복을 찾고, 열매를 찾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8절과 15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100배의 결실을 얻는다고 말입니다. 지금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려고는 하지 않고, 미신에 사로잡혀 점을 치러 다니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예수님 믿고 교회 다니면서도 육십갑자로 육갑을 떨어서 결혼날짜를 잡고, 개업날짜를 잡고, 이사날짜를 잡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신을 잘못 보면 부정 탈 수 있다고 해서 가까운 사람의 마지막 얼굴까지 보는 것을 금하고 시신을 그냥 묻어 평생 아쉬움 가운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미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현혹되는지 모릅니다.

가끔 이상한 바위가 보이거나 이상한 나무가 보이면 여지없이 그 앞에 촛불이 켜지고 시루떡이 놓여집니다. 어떤 분은 신년 초에 본 토정비결을 봤는데 점괘에서 '물가에 가지 말라!'고 나오니까 여름 휴가도 못 갑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집에 뱀이 들어오면 터줏대감이라고 믿고 잡지도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뱀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그처럼 미신에 사로잡히면 영혼이 얽매이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중요한 날 수염을 깎으면 안된다고 믿고 지저분한 얼굴로 나와 면접 시험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 요새는 왜 이리 마스코트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동물이나 사람의 인형이 자기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가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원래 마스코트는 프랑스에 살던 마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행운을 주고, 길을 열어주고, 자기 앞날을 지켜주겠습니까?

무속인에게 가면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살이 끼었다! 마가 끼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바로 그 말에 그 영혼이 얽매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몇백 만원을 주면서 이름을 바꾸고, 묘자리를 바꾸고, 멀쩡한 집에서 이사가고, 몇백 만원의 굿판을 벌입니다. 미신은 멀쩡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많은 것을 잃게 만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 자기의 부덕함 때문이 아니라 집터 때문이고 묘자리 때문이고 이름 때문이라고 하니까 자기 성찰의 길을 막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어떤 미신에도 영향을 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영향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 8:32). 진정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미신에 속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운명에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라 운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운명을 다스리게 됩니까?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운명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처럼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100배의 결실을 맺으며 사는 것이지 이름을 바꾸고, 굿을 하고, 묘자리를 바꾸는 자가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의 원리는 신기하고 괴상망측한 신앙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축복 받습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지킬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한 마음입니다. 미신을 믿으면 여전히 불안하지만 말씀을 듣고 지키면 틀림없이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런 평안한 마음 위에 귀한 행복의 열매들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3. 셋째, 인내해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을 중요성을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한다고 금방 열매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좋은 열매가 주어지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십자가인 줄 알고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하는 시간에 기도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때 무릎을 꿇으면 그 무릎은 축복을 날라주는 수레바퀴이고, 그때 생기는 눈물은 그 수레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인내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약 20년 전에 서울 강동구에 참 가난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서울시 소유의 땅 구석에 판잣집을 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제가 서울 명성교회를 오고 가면서 이런 곳에 누가 갈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없는 교회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성도도 5명도 안된다고 합니다. 몇 년 동안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 마치고 돌아오니까 그곳에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럴듯한 예배당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지지리도 못나보이던 가난한 교회의 예배당이었습니다. 그 교회 건물을 보면서 마음속에 믿음과 소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내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유명한 정치가가 '정치는 인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치는 몰라도 신앙은 진정 인내입니다. 인내하면 반드시 결실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가 행복하게 합니까?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헌신하며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그 십자가의 피가 없으면 애정도 없고, 결실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지불해야 할 지불금입니다. 친구의 피를 본 등산가는 산을 멀리하지 않고 산에 더욱 애착을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위해 헌신의 피를 흘려보고 인내의 길을 지나본 사람만이 교회 사랑을 알고, 교회생활의 행복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는 내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살 것 같지만 오히려 영혼은 점차 죽어가게 됩니다. 교회 봉사를 하다가 '이제 좀 쉬어야지!' 하면 신앙도 죽고, 자기 영혼도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봉사를 포기하지 말고 헌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뒷자리는 결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닙니다. 빨리 앞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헌신하는 영혼이 건강한 영혼입니다. 때로는 너무 환경이 어려워 봉사하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내 영혼을 생각하고, 내 삶의 목적을 생각하고, 내 사명을 생각하고, 나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대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당해야 할 모욕을 당하셨고, 우리 때문에 외로움과 고독에 처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죽는 것보다 힘든 채찍을 수없이 맞아 등이 찢기고, 머리가 찢기고, 옆구리를 찔리고, 60킬로그램이나 되는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엄청난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그 고생을 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참고 견디십시오. 인내하는 영혼이 결국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살면서 왜 불평이 나옵니까?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면 자꾸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죽여 충성하고 교회를 붙들고 울어본 사람은 불평할 수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로 십자가를 집니다. 더 이상 핑계와 변명을 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집안에 우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사업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남편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도 사랑으로 정복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반성하며 더욱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이제는 불평의 근본 원인이 나 때문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내가 그 사람을 실망시킨 때문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불행의 원인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실망시킨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핑계와 변명을 멀리하고 묵묵히 충성하는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이 되고, 열매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소망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은 희망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절망하는 것은 쉽고, 세상이 얼마나 나쁘냐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 길은 성도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영생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만 보고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누구보다 아름다운 천국 미인(미소 짓고 인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현재 하는 일에서, 현재 있는 장소에서 가장 훌륭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장소를 주시면 그곳에서도 훌륭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 가든지 우리의 나이스한 행동과 삶의 모습들 때문에 주님이 빛나고, 믿는 사람이 칭송 받도록 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어떤 미국 목사님 말씀을 인터넷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 목사님이 너무 절망에 빠져 친구와 얘기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항상 밝고 맑아서 목사님이 그 날은 작정하고 '어떻게 그렇게 매일 밝게 사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친구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항상 낙관주의도 믿음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I have always considered optimism to be an important part of faith).' 목사님은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항상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우리 아버지의 세상이고, 우리 아버지가 모든 상황을 콘트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주변의 모든 돌아가는 상황이 비참하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다고 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사랑 받는 존재이고, 돌보심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라는 이 사실만큼 우리가 긍정적인 삶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데 있어서 더 중요한 사실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모든 상황을 다 콘트롤하고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인내할 수 있고, 결국 그 인내를 통해 반드시 좋은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스한 마음을 가지기에 힘쓰고, 말씀을 듣고 지키며, 인내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고, 또한 우리가 효과적인 주님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적인 성장과 건강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항상 나이스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실천하며, 조금 더 인내함으로 100배의 결실을 맺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분당 샛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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