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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기를 깨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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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동안교회 목사)

남강 이승훈 선생은 1864년 평북 정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젊은 시절에 많은 돈을 벌어 평안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고 관직도 얻었다. 그러다가 1907년 평양에서 열세 살이나 어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42세의 이승훈은 크게 변화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조선 민족이 누구인지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당시 우리 민족의 가치체계로는 현실의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뿐더러 미래를 열어갈 소망도 제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안창호를 통해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 발견했다.

당시 신앙운동은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사회개혁 운동의 원동력이 됐다. 이를 통해 의식이 개혁되고 생활 습관에 변화가 나타났다. 노름 축첩 등 비기독교적인 습관이 폐지되고 새로운 도덕과 윤리가 세워져 남녀평등과 경제적 자립 의식이 싹텄다.

이승훈 선생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 오산학교를 세우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지도자 양육에 헌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시신마저 의학도들의 해부용으로 기증했다. 과연 무엇이 남강 선생으로 하여금 전 재산을 쏟아붓게 했으며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을 바꿨는가?

최근 선교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개인과 민족의 삶의 방식이 바뀌려면 먼저 의식이 변화돼야 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의식이 변화되고 삶의 방식이 변화됐기 때문이다. 구한말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 깨달았던 신앙인들은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했다. 그들은 상황을 극복해가는 전환 논리를 통해 새로운 역사로 만들어갔던 것이다.

“삼천리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우리 신앙 선조들은 가장 절망적일 때 희망과 생명력 넘치는 노래를 부르며 어둠을 헤쳐나갔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의식을 변화시킬 힘이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과 공동체, 나아가 국가에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소망을 심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가슴 깊이 흐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닦아줄 수건은 누구에게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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