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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두만강과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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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이재연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15:13)

중국에는 수만 명의 탈북자들이 음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굶주림과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대륙에 닿지만, 그때부터 그들은 중국 공안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쫓겨 다니는 불쌍한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몇 년 전에 이 민족 역사의 증인 같은 두만강을 보기 위해 옌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조선족 K씨 집에 짐을 풀어놓은 뒤 일주일 동안 강을 따라 여행했습니다. 강 주위에는 한반도의 비극적 운명의 증인 같은 매섭고 날카로운 여름 강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이 민족의 눈물 같은 굵은 빗방울이 음습한 대기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옌볜을 떠나기 전날의 해질녘이었습니다. K씨와 함께 시내 중심가 서시장에서 과일을 산 뒤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맞은편에서 넝마를 입고 꾀죄죄한 배낭을 멘 젊은이가 불안한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쫓기고 있는 젊은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뭐라고 중얼거리며 절망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탈북자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함께 밥이나 먹죠. 고발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젊은이는 멍한 얼굴로 우리를 보더니, "일없어요" "일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일없다'는 북한말로 '괜찮다'는 뜻입니다. 젊은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우리의 얼이 스며 있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근원을 알게 해주는 우리말이라는 사실이 비수로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팠습니다.

이국의 낯선 땅에서 암호처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이 싫었습니다. 얼마만큼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젊은이도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한없이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갈 데가 없어 쫓기는 안타까운 발걸음, 허기진 목소리, 잿빛 허공 속으로 번지는 모국어의 비극적 여운…. 그 젊은이는 분단된 이 민족 우리 모두의 초상화인 것입니다. 한이 서린 두만강, 그 슬픈 강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시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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