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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례 요한은 잘못된 어휘, '세례자' 라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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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운 교수(전 장신대 대학원장. 신약학 및 국어학 전공)

말이 안 되는 ‘세례 요한’ 한국 교회가 아직도 예배용으로 많이 쓰고 있는 개역성경(1938년 발행) 은 당시 미국 선교사 주도로 번역된 것으로서 번역된 것으로서 어휘를 바로 쓰지 못 된 것이 없지 않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세례 요한’이란 어휘이다. 이 말은 헬라어 원어에서 물론 ‘세례자 요한’이요 세계의 모든 번역성경이 다 ‘세례자 요한’으로 번역하고 있고, 같은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어 성경에서도 사람을 나타내는 ‘-자’(者)를 붙여 ‘洗禮者’라고 쓰고 있는데 유독 한국 성경만이 최근 1998년의 개정성경 개정판에서까지 ‘세례 요한’ 그대로 쓰고 있으니 이는 실로 언어도단(넌센스)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공생애 사역에 앞서서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증언하고, 예수에게 세례를 베푼 선구자로서 분명히 인물을 가리키는 말인데 ‘세례자 요한’이라 하지 않고 ‘세례 요한’이라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의 부당성은 ‘과학자 아인슈타인’이라 할 것을 ‘과학 아인슈타인’이라 하는 것, 이것을 영어로 말하면, ‘Einstein a scientist’ 라고 해야 할 것을 ‘Einstein a science’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오류이다. 사람을 가리키는 데 ‘-자’(者) 자를 안 쓰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별세를 뜻하는 ‘소천’(召天)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흔히 ‘소천’이라 부르는데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완곡어법(婉曲語法)을 써서 고인의 신분과 종교적 전통에 따라 여러 가지 표현을 쓰는 것이 통례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별세(別世), 작고(作故), 타계(他界), 서거(逝去) 등 외에 왕에게는 붕어(崩御) 또는 승하(昇遐), 불교인에게는 입적(入寂) 또는 열반(涅槃), 가톨릭 교인들에게는 선종(善終) 등을 쓰는데 개신교인들은 주로 ‘소천’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국어학적인 문제가 없지 않다. 보통 한 낱말이 동사와 명사로 이루어졌을 때는 먼저 동사가 오고 다음에 명사가 올 경우에는 그 명사는 동사의 목적어(대격)가 되는 법인데, 그렇다면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은 “하늘(=하나님)을 부른다”가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과는 정반대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법적인 지식을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니기에 이 말은 널리 비판 없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말이지만, 언어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성격을 수용하여 근사치의 해석으로, “하늘(=천국)에의 부르심”(‘하늘’을 처격으로 하여)이라 이해하여 “소천을 맞으셨다” 또는 “소천을 당하셨다”라고 하면 될 것이다. 혹은 ‘소천’ 대신에 ‘서천’(逝天: 하늘로 가시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 기독교인들은 성도의 죽음을 ‘승천’(昇天)이라고 쓰는데, 이는 기이하게도 우리말의 ‘소천’(召天, 일본어로 しょうてん, 쇼오텡)과 발음상으로는 똑 같아서 일본사람들도 ‘소천’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은 문법적인 문제는 논외로 하고 점차 정착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말을 국어사전에 올려야 하느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 점은 ‘축복’(祝福)이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은 ‘소천’이란 말을 바로 쓰고, 국어사전은 이 말을 사전에 올려야 한다.

기독교 용어로서의 ‘축제’ 기독교인들은 ‘축제’(祝祭)라는 말을 쓸 수 없으며 ‘잔치’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축제를 쓸 수 없다는 이유는 ‘축제’의 ‘제’(祭)는 유교의 제사와 같은 행사 즉 우상을 섬기는 것을 뜻하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에서 ‘祭’ 자는 반드시 그러한 제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축하행사(영어의 festival)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祭’(마쓰리) 자를 많이 쓰는 일본어 사전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흔히 쓰는 ‘전야제’(前夜祭)나 ‘사육제’(謝肉祭) 라는 말에서 ‘제사’(祭祀)는 신에 제사한다는 의미가 전혀 없고 어떤 일을 축하하고 즐기며 노는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영한사전에서도 ‘Festival’을 ‘축제’(祝祭)라 기록하고 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하는 예배도 하나의 종교적 축제로 볼 수 있다.

기독교 용어로서의 ‘성가대’와 ‘찬양대’ 기독교 용어로서 ‘성가대’(聖歌隊)라는 말은 쓸 수 없고, ‘찬양대’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이론이 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이나,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이나 그 가사의 내용은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서, 거기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뿐 아니라 성도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는 것도 있고, 자신의 헌신을 결단하는 것도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도, 교회의 사명에 관한 것 등도 있어 전 포괄적인 것인데, 이것을 찬양으로만 제한하여 나타내는 것은 찬송가나 성가의 내용(=성경)을 도외시하는 것으로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거룩함을 나타내는 ‘성’(聖) 자는 가위 기독교 전용의 글자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聖經, 聖書, 聖殿, 聖堂, 聖職, 聖父, 聖子, 聖靈, 聖禮, 聖餐, 聖誕, 聖畵 등 필자가 조사한 것만으로도 50 여개 어휘가 있다(이 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채운 지음 ‘주기도·사도신경·축도’ 46-47면 참조). 인류 역사상 위인 성자가 여럿 있지만 그들의 출생, 예컨대 석가나 공자의 탄생까지도 결코 ‘성탄’(聖誕)이란 말을 쓰지 않고, ‘성탄’은 오직 예수에게만 사용되는 전용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이 기독교를 우리보다 먼저 받아 ‘성가대’라는 말을 썼는데, 그 후에 같은 한자(표의문자)를 쓰는 우리나라가 단순히 일본이 썼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쓸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언어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소산이라는 본질을 모르는 소이(所以)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찬양은 제한적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성가는 전 포괄적 개념을 가진 말이다.

예수님 당시 주식은 떡 아닌 빵 앞서 말한 개역성경에서는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의 주식이 한국의 떡인 것처럼 되어 있다. 즉 그들의 주식인 ‘아르토스’ 곧 빵을 우리말에서 ‘떡’으로 번역한 것이다. 예컨대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유대나라의 빵으로 식사한 것을 언급할 때마다 “떡 잡수실 때 ...”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한 다른 말 번역을 보면 영어에서는 ‘bread'로, 독일어에서는 ’Brot'로, 불어에서는 'pain'으로, 라틴어에서는 ‘panis’로, 중국어에서는 ‘麵包’(빵)로, 일본어에서도 ‘パン’(빵) 등으로 바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도 공동번역(1971년)이나 표준새번역(1993년) 등에서는 ‘빵’이라고 바로 번역되어 있으나, 아직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써 오던 개역성경(1938년)의 ‘떡’을 그대로 쓰고 있다. 유대인의 주식은 빵이요, 떡은 한국인에게도 주식이 아닌 별식인데, 이 떡조차 유대나라에는 있을 리 없고, 예수님께서도 유대인으로서 주식인 빵을 잡수셨다. 사실과 일치되지 않은 말은 바른 말이 아니다. 유대인의 주식은 떡이 아니고 빵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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