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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정한 회개와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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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흥운동은 회개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지도자들의 진정한 회개가 있었다. 1903년 원산의 남감리교 선교사 하디의 회개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이었다.

선교사들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악취나는 토속적인 음식을 마다하지 않았고 오두막집에서 새우잠을 자며 겸손하게 전도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한국인들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후 선교사들의 사역은 힘을 잃고 선교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하디 선교사는 이런 현실을 놓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였던 것이다.

이런 회개의 불길은 계속 이어지다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집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것은 당시 한국 교회의 가장 유명한 설교가였던 길선주 장로의 회개간증이었다. 그는 친구의 유산 일부를 횡령했다. 이 회개는 계속 이어졌다. 당시 장대현교회에는 조사 강씨와 장로 김씨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다. 먼저 조사 강씨가 자기가 김 장로를 미워했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김 장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도회는 계속되었다.

얼마 후에 김 장로가 일어나서 자기는 강 조사를 미워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교회의 목사인 선교사 방위량을 극도로 미워했다고 고백하면서 방위량 목사에게 자기를 용서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방 목사는 아마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김 장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이런 회개와 화해의 역사가 일어난 뒤에 이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성령의 큰 은혜를 체험하였다.

1907년의 부흥회는 한국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선교사와 한국 신도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고 목사와 장로 사이의 불신의 장벽이 무너졌으며 교인들 상호간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됨으로써 한국 교회는 진정으로 큰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이다.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 심각하다면 교회가 여러 가지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성장을 이룩하려고 한들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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