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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월과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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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어느 문인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술회한 글이 생각난다. 아마 1960년 자유당의 부정부패한 정권이 정의에 불탄 젊은이들의 함성에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고 쓴 것으로 기억한다.

금년 부활주일은 4월 16일이다. 본래 부활절은 고대 서방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유대력 니산월 14일이 지난 첫번째 주일’이었다. 그러나 주후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부활절은 매년 춘분(春分)이 지난 만월 바로 다음에 오는 주일로 확정됐다.

한국교회와 부활절은 의미가 깊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펠젤러 두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첫 발을 내딛은 날이 그해 부활절인 4월 5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한국교회는 부활절에 복음을 받은 후 1910년 한일합방이란 국치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36년 만에(1945년 8월 15일) 다시 민족적인 부활을 체험함으로써 선진 대국으로 발돋움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월은 필자에게도 뜻깊은 계절이다.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인 1955년 4월 10일 부활주일에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날 아침에 있었던 중생의 은혜와 가슴 뜨거웠던 세례 예식을 잊을 수가 없다. 세례를 받은 그날 첫 성찬예식에 참석하여, 날 위해 찢기고 피 흘리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떡과 포도즙을 처음 받아먹던 감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전율하는 감사의 은총을 주체할 길이 없다.

이 은총은 이 땅에 선교사로 처음 발을 내딛은 아펜젤러의 기도를 연상케 하는 그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제물포항 부두에 내린 아펜젤러는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그의 일기 속에 남겼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음의 철창을 산산히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마귀의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유와 빛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처럼 주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최고의 희망이요, 생명의 복음인 것이다. 1960년 4월 19일 다음날, 필자가 계엄군의 일원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학생들의 데모를 진압하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국가적으로는 위기요, 민족적으로는 비극인 순간이었지만 나 개인에게는 사회를 보는 눈이 열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필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계엄군의 신분으로 겉모양은 군복을 착용했지만, 솔직한 심정은 시위대와 함께 부정부패한 정권을 향한 의거에 동참했었다. 당시 계엄군으로 동원된 다른 동료들의 이야기 역시 필자와 같았다. 당시 우리 계엄군을 이끌었던 송요찬 장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부대를 진두지휘했던 대대장과 중대장들의 지시 속에서도 그러한 심정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지휘관들은 총에 공포탄만 장진하고 절대로 실탄은 장진하지 말 것을 수시로 이야기했다. 필자는 당시 대학에 적을 두었기에 일찍 군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학보병(학적 보유자를 그렇게 불렀다)으로 입대해 근무하고 있어서, 부정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군심(軍心)까지도 떠났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민족에겐 4월이야말로 불의한 정권을 넘어뜨린 계절이요, 종교적으로는 민족의 소망이 된 기독교가 전해진 희망의 계절, 죄악 가운데서 다시 살 수 있게 됐던 부활의 계절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죽지 아니하면 새로운 부활의 생명이 있을 수 없다(요 12:24)”는 부활의 진리가 이 땅에 이뤄지는 역사적 사건이 4월 아침, 재현되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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