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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 간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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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어떤 사람이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지게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항아리가 하나씩 있었다. 왼쪽은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는 반쯤 비어 있었다. 물이 샜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나를 버리고 새것으로 쓰세요.” 그러자 주인이 대답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갔다는 것을 안다.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았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오른쪽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느냐? 나는 그 생명을 즐긴단다.”

많은 사람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할 때도 있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완벽한 사람들 때문이다. 당신은 금이 안 간 아내인가? 그래서 남편이 죽는 것이다. 당신은 금이 안 간 남편인가? 그래서 아내가 죽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명문대를 나온 어떤 학생을 알고 있다. 부모의 완벽성 때문에 자식이 죽어가고 있었다. 2등을 해도 만족이 없었다. 심지어 1등을 해도 전교 1등을 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아이의 심성이 아스팔트처럼 메마른 이유를 알게 됐다.

세상을 황무지로 만드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금이 간 항아리처럼 좀 부족해도 살리는 사람이 좋은 이웃이 아니겠는가. 좀 금이 가면 어떤가. 틈이 있으면 어떤가. 좀 부족하면 안되는가. 하나님은 금이 간 인생을 좋아하신다. 세상에서 천하고, 멸시 받고 약한 것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영국 의회에 어떤 초선 의원이 있었다.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아주 완벽했다. 연설을 마치고 난 뒤 연설의 대가인 윈스턴 처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연설에 대해 평가를 해 달라고 했다. 물론 처칠로부터 탁월한 연설이었다는 평가와 칭찬을 기대하는 질문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대답은 의외였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나!” 너무 완벽함은 정떨어진다. 한 방울의 물도 떨어뜨리지 않는 항아리는 황무지를 만든다. 탁월함은 완벽함이 아니다. 약함과 부족함과 새는 물이 생명력이다. 금이 간 항아리들 때문에 생명이 충만한 세상을 보고 싶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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