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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컵과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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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수 목사 (분당우리교회)

불평과 불만을 늘 입에 달고 사는 제자가 있었다. 하루는 스승이 그를 불러 소금 한 사발과 마실 물을 한 컵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가져온 컵에 소금을 한 움큼 집어넣더니 그것을 마시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워하며 소금물을 마신 제자에게 스승이 물었다. “맛이 어떠냐.” 그러잖아도 불만이 많은 제자인데 예쁜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퉁명스럽게 “짭니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스승이 제자를 호수로 데려갔다. 조금 전에 컵에 넣었던 것과 똑같은 양의 소금을 호수에 집어넣게 했다. 그리고는 컵으로 그 물을 떠서 제자에게 마시게 했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맛이 어떠냐.” 그러자 제자가 대답했다. “시원합니다. 짜지 않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스승이 이렇게 훈계했다. “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은 것이니라. 그런데 짠 맛의 정도는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 네 속에 고통이 있고 원망과 불평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너는 컵과 같은 존재가 되지 말고 호수와 같은 존재가 되거라.”

가벼운 예화에 불과지만 마치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처럼 여겨졌다. 컵과 같은 존재가 돼 내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원망과 불평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호수 같은 인생이 되고 싶은 열망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런데 얼마 전 다시금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 미국에서 벌어졌던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의 후일담이다. 그 사건 후, 학교 캠퍼스에 희생자들을 위해 추모석들을 세웠는데 놀랍게도 그 중에는 범인 조승희군을 위한 것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32명을 살해한 살인마를 희생자들과 같은 대열에 놓고 함께 추모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똑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아니나 다를까, 그 기사를 전하는 모 사이트 게시판에는 독설과 저주의 댓글들이 난무했다. 미국은 비록 타락했지만 그럼에도 기독교 국가로 출발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우리 민족과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다. 예수를 잘 믿어 컵과 같은 우리의 존재가 호수와 같은 존재로 변화되기를 기도했다.

조승희군 추모석에 놓여 있었다는 한 여학생의 글이 지금도 마음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승희야,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네가 아무런 도움과 안식을 찾지 못한 게 너무 안됐고 가슴이 미어진다. 네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이제는 평화와 사랑도 조금은 찾기를 빈다.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네가 그렇게 분노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네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하나님께서 너를 받아주시기를 기도하마.”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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