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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의 무능함을 고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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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본철 교수 (성결대학교 성결신학연구소장)

고후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흠없이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 맛볼수록 나 자신의 무능함과 부패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또 내가 잊지 말 것은 내가 아무리 주님 안에서 성숙되어진다고 해도 나의 육(肉)은 비참한 육의 상태로 그대로 있는 것이지, 결코 나의 본성이 개선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같은 생각은 내 안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대신, 부패한 자아(自我)를 따르는 삶을 낳게 해 주는 것이요, 결국 그 결과로서 나는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육체의 일(갈 5:19-21)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무능력과 죄성(罪性) 많음을 철저히 깨닫는 자는 복이 있다.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주님의 임재 밖에서는 숨쉬기조차 싫어하는 그런 간절함이 내 속에서 지속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수시로 기도와 찬양 중에 나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주님께 아뢰고, 그분의 긍휼히 여기심을 간구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주님을 매사에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 속에 어떤 시련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사실은 이같은 시련 역시 우리들의 미숙함이 만들어 낸 수치일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한분만을 고요히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고귀한 지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연단을 받아 주님 한분만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참으로 고귀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람보다 신뢰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겠지만, 그러나 매사에 있어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행한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실수와 허물 등을 통해서, 고요히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즐겨 따르기를 훈련받게 되는 것이다.

이 시간 주님의 임재하심과 그 분의 인도하심만을 따르는 삶을 방해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때로는 내 의식 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이 갑자기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또 때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 무척이나 지겹거나 따분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떨 때는 나의 욕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찾으려 하기는 커녕 오히려 주님께 어처구니없는 흥정을 벌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일이라도 그리고 어떤 장소에서든지 그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임재하심을 환영하며 숨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하루의 모든 일은 이 가장 중요한 일과 더불어 진행됨이 가장 거룩하고 능력이 있다. 어느 한날이라도 주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살아간 날이 있다면, 아! 나는 바로 그 일 때문에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의 황폐함과 가난함과 헐벗음과 눈멂을 보지 못하고(계 3:17), 자아에 부풀어 만족하고 있는 가련한 상태이기 때문에.

+ 주님, 이 가련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나 자신의 무능함을 언제나 밝히 볼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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