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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참된 기쁨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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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영 목사 (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우리는 때때로 기도 중에나 찬양을 하는 동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에 전율할 때가 있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 받았으나 분주한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비전과 꿈을 가슴 떨리도록 새롭게 인식할 때, 기쁨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피부로 느껴질 때 우리의 영혼은 기쁨에 물들게 되고 현재 어떤 고난을 겪고 있다 해도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기쁨을 놓치지 않게 된다.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어디인가. 나는 늘 생각한다. 내 안에 강물처럼 흐르는 기쁨의 근원은 십자가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고…. 때때로 어려움은 여러가지 상황으로 다가오곤 한다. 때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한 심리적인 부담이 마음을 압박하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우리는 생애 내내 한 순간도 어려움이 없이 지나갈 때가 없는 것 같다. 어려움과 고난은 늘 우리 곁에 맴도는 공기 같고 바람 같아서 때때로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 순간 우리에게는 견고한 믿음이 필요하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믿음 말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의 고백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너무나 절실히 필요하다. 많은 사람을 상담하다 보면 정말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그들에게는 주님이 옆에 계시는 것을 믿는 것과 주님이 모든 고통의 상황을 이기게 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눈꼽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절망이 빈틈없이 영혼을 가득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주님께 간절한 기도로 도움을 요청하곤 한다.

나 또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왔으며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리고 싶은 우울의 깊은 강을 건너 왔기에 그들의 아픔과 절망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한 발만 희망을 향해 내딛고 싶으나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 영혼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옥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그들을 도와줄 주님의 손은 언제나 그들을 향해 내밀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한 자매를 상담하면서 더욱 그런 안타까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매는 자살 기도를 다섯 번이나 했고, 상담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자기는 또 자살을 하고야 말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매에게 희망적인 말과 믿음을 주는 말, 하나님의 사랑 등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으나, 그녀는 그 어떤 이야기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는 결코 희망이 없으며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동맥을 끊어서 난 상처를 붕대로 감고 있는 그 자매의 여린 손목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어떻게 하면 이 자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이토록 결심을 굳힐 정도로 절망하게 된 이유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발단은 남자친구가 결혼을 빙자해서 성관계를 요구했으며 그 요구에 응하자마자 이 자매를 버리고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는 심한 우울증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 왔으며 그 우울증의 근본 기저에는 역기능적인 가족이 있었던 것이다.

상담을 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느냐고, 왜 그렇게 사람에게 집착하느냐고, 그냥 쿨하게 헤어져버리지 그깟 남자아이 하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느냐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매의 영혼 안에는 외로움과 슬픔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받은 기억이 없고 늘 냉랭한 가족들 사이에서 지독하게 외로웠으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비록 자신을 버린 남자일지라도 떠나보내지 못하고 극심하게 집착하고 죽음으로 복수하려는 마음까지 가지게 된 것이었다.

가족 간에 사랑이 없으니 이 가정에 기쁨이 있을 리 없었다. 부모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으며, 함께 있을 때는 서로 소리지르며 싸울 때 뿐이었다. 가족 중에 그 누구도 둘째인 이 자매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주지 않았다. 마치 집안에서 없는 존재처럼 취급을 받았으며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소리없이 숨죽이며 살아왔던 것이다.

가족….

우리에게 가족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모여있는 가정 안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불협화음들은 어린 영혼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지 나는 이 자매를 보면서 또 한번 깨닫게 되었다. 늘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에게는 단 한 줌의 기쁨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자신에게 절망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자기자신을 규정짓는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우리에게 기쁨을 빼앗는 존재가 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하고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죽게 만들려는 사악한 존재가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언제나 우리를 노리고 있다.

가정 안에서 기쁨을 다 잃어버릴 때 가족들 사이에는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대화는 단절되어 버리며, 얼음같은 침묵만이 떠다니게 된다. 가족들과의 따뜻한 마음의 교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차가운 기운이 서리고, 가족들 사이를 떠 다니는 공허감은 상처받은 영혼을 만들게 된다. 그 침묵 속에서 분명히 절망하는 자녀가 생기게 되고 그 자녀로 인해 부모는 더 큰 절망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알콜중독자인 남편을 둔 여성이 있다. 늘 술에 절어 사는 남편을 바라보며 느끼는 절망감은 자녀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들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랜 상담과 치료 후에 남편은 결단하고 술을 끊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가정의 분위기는 침울할 데로 침울한분위기에 잠겨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괴물 보듯 대하고 부부 사이에도 따뜻한 교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이 가정에 필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흐르는 보혈과 거기서부터 파생된 영적 기쁨이다. 영혼의 상처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기쁨을 빼앗길 때 우리의 삶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절망은 파도처럼 우리와 우리 가정을 덮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한순간에 가족들을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을 만큼 위력적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이사야 49:13)”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의 손, 그분의 눈빛, 그분의 말씀을 놓칠 때 우리는 순식간에 기쁨을 강탈당하게 될 것이다. 그분을 붙잡아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그분의 보배로운 피…. 그것이 우리를 깊은 우울에서 자유롭게 하며 날마다 새로운 기쁨 속에 오래 전에 잊어버렸던 꿈과 비전을 다시금 새롭게 일으켜 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쁨 속에 오랜 우울을 걷어버리고 큰 소리로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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