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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묶기와 다리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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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삼일교회 목사)

범죄한 인간은 하나됨을 잃어버렸다. 상실한 하나됨을 회복하기 위해서 온갖 발버둥을 친다. 힘들게 하나됨을 추구하지만,그 안에도 여전히 타락의 요소는 남아 있다. 타락한 하나됨은 ‘묶기’이다. 묶기는 끼리끼리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다리놓기’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분리된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담을 허시고,연결시키는 분이시다. 다리놓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반대편을 향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은 묶기이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일하려면 본인은 가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교회에 빈민 사역을 꿈꾸는 사역자가 있었다. 담임목사가 그를 가장 부유한 사람이 있는 지역 담당자로 발령했다. 그는 화가 나서 담임목사를 찾았다. 빈민목회에 대한 꿈이 있는 것을 알면서 왜 부자동네로 보내느냐고 항의했다.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부자를 모르고 어떻게 빈민목회를 하느냐? 당신이 빈민목회를 하려고 하느냐,혁명을 하려고 하느냐? 부자의 한계,공허감,더 많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빈민 목회는 불가능하다.” 가난한 자가 부자를 이해하고,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이해할 때, 그것이 다리놓기이다. 다리놓기는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특권이 생긴다. 그 특권은 자기를 위해서 누릴 것이 아니라 반대편을 향해서 사용할 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예수님은 능력있는 분이었다. 그 능력으로 세리와 죄인들을 향해 나갔다. 그래서 그들을 대변했다. 그래서 아름답고, 강력했다.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이 10일 가까이 금식을 했다. 수도원에서 내려와 시장을 통과할 때,제자 중의 하나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시장에서 파는 죽을 막 퍼먹기 시작했다. 곧 주변에는 정죄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다른 제자들로 둘러 싸였다. 죽을 먹은 제자는 고개를 숙이고,이제는 쫓겨났구나 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때,프란체스코는 죽 파는 좌판에 뛰어들어 자기도 죽을 먹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나도 배고파 죽을뻔했다. 야,너희들도 와서 먹어” 곤경에 처한 제자의 고독한 자리에 같이 서 준 것이다. 그것이 곤경에 처한 제자를 살렸다. 이것이 성자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 묶기에 사용할 것이 아니라 더 약한 사람과 다리놓는데 사용한다면,생명의 현상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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