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누가 진짜 바보인가?

첨부 1


- 배정웅 목사(아가페크리스챤치유센터 대표)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가운데 “바보(Idiot)”라는 소설이 있다. 원래 “이디옷”이란 바보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백치나 형편없는 멍청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는 표현이다. 여기서 주인공 미쉬킨 왕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인물(Christ figure)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그가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기는 커녕 세상 사람들로부터 바보라고 불리운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제정 러시아 당시의 다른 많은 귀족들과는 달리 榴?재물에 대한 욕심도, 권력을 향한 갈증도, 이성에 대한 정욕도,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명예에도 집착하지 않는 한없이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그의 영혼은 진리라고 불리는 오직 한 목표만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당시의 다른 많은 귀족들로부터 결국에는 “바보”라고 불리우고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미쉬킨 왕자를 통해 돈과 성과 권력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미쉬킨이 바보가 아니라 그를 바보라고 비웃고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이 진짜 바보요 멍청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그 바보들을 갈망하고 부러워하며 그들 속에 끼지 못하여 애태우고 초조해하며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왜 바보인지도 모른채………

돈, 성, 권력의 문제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쉽게 해갈될 수 없는 타는 목마름이기도 하다. 오늘 현대인들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누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돈은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이미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지도 오래다. 돈이 인간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힘이 있고 돈으로 안되는 것이 거의 없어 보이는 세상인 까닭에 돈의 위력은 거의 무소불위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더 맘몬 신의 노예로 전락해 가고 있는 중이다.

성은 이 시대의 또 다른 집착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 젊은 층들이 결혼의 기피와 그로 인한 인구감소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미성년자들의 성적 노예화는 이미 세계적인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직도 남녀의 성차별은 세계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권력에의 집착은 죽음 보다도 강하다. 모두가 힘을 소유하려 애를 쓰며 보다 큰 힘을 소유하기 위해 경쟁을 한다. 이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셋은 따로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돈으로 권력과 성을 통제하고 돈과 성은 또 다른 권력의 디딤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이 셋은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신의를 저버리는 길을 선택하며, 성을 돈과 권력으로 사고 팔아 인격을 상대화하며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권력으로 돈과 성을 조종하고 통제하여 자기 중심적으로 권력을 행사함으로 힘을 가질 수록 더욱 폭력화, 폭군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2004년도에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숫자가 13,293명에 이른다는 경찰청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 가운데 많은 숫자는 실업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부는 실연의 아픔이나 입시나 고시의 실패와 같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비관하여 자살한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통계를 볼 때 우리가 얼마나 돈과 성과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 알 수가 있다.

또 지난주 신문을 보니 한국에서 가짜 음악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150명이나 적발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러시아의 유명 음악대학의 박사학위를 국내에서 돈을 주고 사서 박사 행새를 하며 어떤 사람은 대학에서 가르치다 적발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 역시 진리 보다는 가짜라도 박사학위를 통해 돈과 성과 권력을 누리고 행사해 보려는 강력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요즘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 가운데 “가짜라도 박사학위 하나 받아야겠다”는 말들은 왜 우리가 이렇게 학위에 강하게 집착하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는 표현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도스토예프스키 당시나 지금이나 가짜들이 진짜를 조롱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의 눈에는 미쉬킨 같이 순진하게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형편없는 바보요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따르는 사람이 지극히 적은 좁은 문의 길이기도 하다. 반면에 진짜 바보 같은 삶은 진리를 외면하고 돈과 성과 권력을 추구하는 길이기에 찾는 사람들이 많은 즉 넓은 문의 길임에 분명하다. 넓은 문은 그 길이 넓어 찾는 사람들이 많아 바른 길인 것 같지만 결국은 멸망으로 인도되는 문이다.

이런 현상은 경험적으로 볼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금까지 영성지도라는 공간을 통해 필자가 대면한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문제가 순수하게 영적인 차원의 문제들( 하나님, 사랑, 은혜, 구원, 소명, 거룩, 헌신, 용서 등과 같은 용어들로 표현되는)임을 애써 강변하고 그렇게 표방함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면에는 지극히 세속적인 즉 돈과 성과 권력의 문제에 집착되어 있다는 전통적 주제에서 대체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더구나 목회자라고 예외가 될 수도 없다. 인간이 이런 존재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용할 때 비로서 치유와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을 거부하고 무시하면 소위 갓톡(God talk)에 사로잡혀 인격의 정체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진정한 집착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한 결코 인격적 성장도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기도 불가능해 질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려하고 금기시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돈, 성, 권력의 문제는 동시에 가장 영적인 주제인 것이다. 건강한 영성은 바로 이러한 주제들을 어떻게 생활 속에서 구현하며 살아가느냐로 그 색깔을 드러내게 된다.

이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저변에 깔린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주제들인 까닭에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질문은 과연 누가 이 시대 진정한 바보인가라는 물음이다. 오늘 이 시대의 대표적 정신으로 보면 미쉬킨 왕자와 같은 인물은 틀림없는 바보요 천치요 멍청이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또는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