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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밀실 안의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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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연(소설가)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메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16:26)

전 당신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봉사기관에서 전화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당신은 이혼 후 홀로 지낼 때 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통원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지요. 구멍처럼 뚫린 상처 위로 시린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 자신이 소화할 수 없는 절망이 불쑥 솟구쳐오를 때, 습관처럼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떤 날은 자기만의 성(城) 안에서 피어나는 환상 속의 공주가 되어 횡설수설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선망하는 명문여고에 명문대학을 나온 당신은 그날그날 하나의 소재나 명제를 제시하며 말을 시작합니다. 어떤 날은 ‘이성 관계에서 친구가 가능할까요?’라고 설레는 목소리로 묻기도 합니다. 당신은 이쪽의 말을 대강 듣고 나서 먼저 전화를 냉정하게 끊습니다. 당신과 숱한 이야기를 나눈 지도 어느새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당신의 말은 한번 깊게 뿌리 내린 상처 위에서 온갖 꽃들로 피어났습니다.

당신의 가장 은밀한 곳을 건드리는 구름 끼고 빛 없는 침침한 날엔 여전히 전화를 걸어옵니다. “괴로워 죽겠으니 살려주세요!” 그런 날은 저도 온몸이 무겁고 암담하지만, 힘내라고, 인생은 별것 아니라고 되풀이해 말해 주지요. 당신은 어떤 누구보다도 내 속의 알지 못하는 인간을 느끼게 해줍니다.

10년 전과 변하지 않는 것이 또 있습니다. 당신은 자기만의 밀실 안에서만 지내고 있습니다. 말로는 세상을 재단하고 누비고 다니지만, 한번 깊숙이 박힌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한 발짝씩 밖으로 나오세요. 세상은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은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한판 벌이는 가면극의 무대와 같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한 발짝 다른 곳으로 나가 보세요. 당신을 버리지 않을 단 한 분, 이 세상 낮은 곳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어디선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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