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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 저녁은 혼자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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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벌써 9월의 첫 주일입니다. 그렇게 더웠던 여름날의 무더위도 이젠 각자의 기억 속에 숨겨지는 한 조각의 추억이 되겠군요. 아프칸에 피랍되었던 분들이 모두 풀려났다는 소식에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은 배형규 목사와 신성민 형제 이 두 분의 희생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는 것은 그 분들의 희생이 한 알의 밀알처럼 거룩한 씨앗이 되어 반드시 열매 맺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올해 73세의 필리핀 인 ‘산티아고’ 수녀에게 가나안 농군학교 창설자인 일가(一家) 김용기(1912∼1988) 선생의 정신을 기려 제정한 제17회 일가상(사회공익 부문)이 수여됐다고 합니다. 그녀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을 그 때만 하더라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살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조국을 뒤로하고 23세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와서 50년을 한 결 같이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온 몸을 다 바치신 그분에게 이번의 수상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보다 자기가 사랑한 나라에서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은 전혀 필리핀 사람 같지 않은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의 인자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오늘은 ‘산티아고’ 수녀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더불어 나누고 싶은 글 하나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비만 오면 부침개를 부쳐달라던 딸아이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기에서 들리는 딸의 목소리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걸까?
한참 울어대던 딸아이는 겨우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아이는 어디가 아픈지 분유도 안 먹고, 화장실 변기는 물이 내려가지 않아요, 더구나 남편은 저녁에 친구를 데리고 온대요. 비는 오고 시장은 하나도 안 봐놨는데....”
말을 마친 딸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걱정 마. 엄마가 화장실 고치는 사람 부를게... 그리고 장도 대충 봐 가지고 가마. 아이는 기저귀 한번 봐주고... 그만 울래도... 가면서 네가 좋아하는 부침개 부쳐가지고 갈 테니 맘 편하게 기다려... 그런데 김서방은 몇 시쯤 들어온다니...?”
내 말에 갑자기 딸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딸아이는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기... 제 남편은 김 서방이 아니라 박 서방인데요...”
“뭐!! 박서방이라고 김서방이 아니고....”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설마 내가 딸의 목소리도 제대로 못 알아들은 건가..? “아 미안해요 내가 전화를 잘못했나봐요” 사과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건너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요.. 그럼 안 오실건가요?”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되었다. 잘못 걸린 전화 아닌가?
“죄송해요. 전 친정 엄마가 없어요. 잘 못 걸린 전화라는 걸 알았는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차마 말씀 드릴수가 없었어요. 이런 날 엄마가 살아계시면 전화해서 도와 달라고 할 텐데.. 얼마나 생각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전화가 걸려 온거예요. 엄마 같아서....우리 친정 엄마 같이 느껴져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는 말을 마치고도 그는 계속 울었다.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다시 전화 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오늘 딸네 집에 좀 다녀 와야겠어요”
“응! 은영이네 가려고..?” “아뇨” “그럼 은영이 말고 딸이 또 있나?” 남편의 의아해 하는 말투에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있어요. 오늘 생긴 딸요. 그 딸한테는 지금 내가 필요하거든요. 부침개 해가지고 가봐야 하니까 오늘 저녁은 혼자 드세요” 』

소설인지 실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낮은 울타리 2002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에겐 누군가의 작은 도움의 손길도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내가 따듯한 손길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필리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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