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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죄송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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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형 (기독교연구소장)

공항 입국장을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처연했다. 모두들 고개를 숙였다. 침통한 가운데 그들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많은 크리스천이 착잡함 속에서 이들의 귀국 소감을 들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 죄송한 것이 무엇인지를.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를. 한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자신들의 투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량한 이들을 납치한 탈레반 테러리스트다.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한다. 한국인 봉사팀원들은 “죄송합니다”라는 말 대신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자신들 때문에 마음 졸이고 걱정해 준 수많은 국민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들이 죄송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공항에 들어올 필요는 없었다.

한국인들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비록 정부의 권고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곳이 여행금지 구역은 아니었다. 이들 외에도 많은 한국 단체들이 아프간에서 무언가의 목적을 가지고 사역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다 ‘만의 하나의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은 어쩌면 다른 단체도 당할 수 있는 불가항력의 일인지 모른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만 세상일이 말처럼 쉽게 되는가.

이번에 피랍됐던 한국인들에겐 봉사라는 이름 속에 내포된 선교적인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선교적 목적이 있다. 예수 사랑을 알기에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이 크리스천들에게는 있다. 이런 열정이 비단 크리스천들에게만 있겠는가. 이 땅을 살아가는 누구든 어떤 고귀한 목적을 갖고 있다. 행동 하나 하나에는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숨은 의도가 내포돼 있지 않은가. 어쩌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랍인들 가운데는 이슬람 전파를 위해 선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앵글을 바꿔 생각해 보자. 이번 피랍사태 속에서 많은 감동적인 일들이 있었다. 헌신적인 봉사와 젊은 열정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생명을 양보한 가녀린 여성, 인내와 간구, 죽음 등 모든 극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다.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모두가 사랑의 안경을 쓰고 이들을 바라볼 때 질타보다는 따뜻한 위로를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위로는 잠시뿐, 비난이 난무한다. 비난하는 이들 가운데 과연 목숨까지 내놓고 남을 위해 헌신해본 적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 교회는 분명 이번 일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물량주의적이고 전시적인 선교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한국 교회는 타문화권 선교를 해나가는데 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그러나 봉사란 이름으로 선교를 했다고 죄인처럼 “죄송하다”고 읊조릴 수는 없다. 한국 교회여, 사랑으로 아프간에 피랍된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 걱정해준 이 땅의 선한 한국인들과 수고한 정부에 감사하자. 그리고 기억하자. 사랑으로 펼치는 선교는 결코 죄송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말하고 싶다.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주체는 탈레반이다. 이것을 왜 외면하는가.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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