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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복합성을 즐기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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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너드 스위트(미국 드루대 석좌교수)

모던 시대가 단순성을 미덕으로 삼았다고 한다면 포스트모던 시대는 복합성을 유익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강한' 창조물들을 보라. 코뿔소의 뿔, 쇠를 씹을 수 있는 들쥐, 핵폭발에도 살아 남는 바퀴벌레, 철보다 강하고 낙하산을 만드는데 쓰이는 케블라 섬유보다 질긴 거미줄. 어째서 이런 것들이 그토록 강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들이 가진 디자인의 복합성 때문이다. 즉 강도와 힘은 단순성이 아닌 복합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문화는 세계화(집중화)와 지역화(분산화)라는 복합성을 띠고 있다. 최근 셀 목회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교회는 바로 분산화와 집중화의 복합성이 가지는 능력을 보여주는 실례일 것이다. 따라서 개교회의 예배는 전체 교인을 통합시켜주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소그룹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좀더 큰 시각에서 보면 교회는 전 세계 60억 인구를 잠재적 교인으로 인식하면서 목회를 해야 한다. 이 말은 개별과 전체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는 복합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더 이상 개별적 국가나 민족으로 구분지어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세계화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선택의 대상은 아니다. 세계화를 거부하는 반세계화 운동만큼 세계화되어 있는 운동을 본 적 있는가.

아프리카를 위협하고 있는 에이즈의 피해, 러시아의 실업자 문제, 페루의 지진, 소행성과 충돌한 목성, 알카에다의 테러 위협 등. 과연 이들은 어느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게만 관련된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다. 우리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제 교회는 단순성을 위한 일치에 관심을 갖기보다 복합성을 위한 연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이웃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기업의 경우를 보라. 미국 기업은 국외 생산 비율이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한 미국 전자 회사의 선적 라벨에 쓰인 문구다. '다음 국가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나라에서 생산됨-한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로, 모리셔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정확한 원산지는 알 수 없음'. 바로 이 생산 과정의 복합성이 품질 향상과 수익 증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지역교회간 연계, 그리고 세계교회 사이의 협력으로 복합성이 제공해 주는 강력한 목회와 선교를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신학자 본 회퍼의 이야기를 기억해 보자. 그는 복합성을 수용하는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라고 하면서 "우연한 마주침이든 매일 갖는 친교이든 기독교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안에서 서로에게 속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번역=김영래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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