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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혼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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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연(소설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스페인의 십자가 성 요한(1542∼1591)은 신앙을 5단계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네 번째 단계에 ‘영혼의 밤’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불이 꺼지고, 주위 사람의 도움의 손길은 끊어지며,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가 버린 절망의 때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악령이 자신을 떠나지 않고 괴롭히자 너무 절망한 나머지 잉크병을 내던지며 어두운 영과 피나는 격투를 했다고 합니다. 영육의 대립은 구원을 향한 인간의 조건 같습니다. 저에게도 그 네 번째의 ‘영혼의 밤’이 찾아옵니다.

세월 속에서 생긴 상처와 아픔이 자신도 모르는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누군가에게 손목을 잡아채인 듯 삭막하고 두려운 길로 끌려갑니다. 무의식 속에서도 불쑥 얼굴을 내미는 죄의 씨 같은 섬뜩한 연상 작용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몇 년 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며칠간 묵었을 때, 겨울이라 그런지 해 구경을 못했습니다. 사방은 내면을 비쳐주는 듯한 잿빛이었습니다. 파스텔톤의 옅은 색상의 건물과 잿빛은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도시의 잿빛은 존재의 깊이로 내려가게 하는 하나의 계단과 같았지요.

바람 몰아치는 긴 저녁에 불빛 아래서 글을 쓰게끔 하는, 창조적 열기를 안겨주는 몽상적인 뿌연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악령과 천사가 대결하여 뱉어놓은 암흑기의 잿빛은 거듭나기 위한 고통의 산물일 것입니다.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나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 그 원하지 않은 영적 시련기가 닥쳐오면 저는 넋 나간 사람처럼 읊조립니다. “버리지 말아주세요….” 피폐한 몰골로 살려달라는 말만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의 빛살 같은 것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황폐해진 상한 몸뚱이 구석구석에서 싱그러운 봄 냄새가 경직된 좁은 생각을 뚫고 솟아오르려는 기운이 느껴집니다. 점점 가까이 다가와 온몸을 감싸는 빛, 그것은 부활하신 생명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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