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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을 위한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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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중세 수도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4단계로 설명했다. 정화 단계, 영적 대각성의 단계, 하나님과 나와의 합일한 삶의 단계, 완전 성숙의 단계다. 특히 중세시대 영성의 진수를 보여준 성 버나드는 ‘하나님과 나의 합일의 삶’을 다시 4단계로 설명한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고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깊고 신비한 주님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하나님과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4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나를 위한 내 사랑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내가 은혜 받고 살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다. 사랑의 동기가 내 자신이며 목적도 내 자신이다. 이것은 욕망적 자기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이라 할 것이다.

둘째, 나를 위한 하나님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은혜와 복을 받고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번영신학적 입장에서 형성된 신앙의 초창기 모습이다. 자칫하면 기복주의로 흐를 수 있는 초보적 신앙 양태라 하겠다. 내 자신이 목적 성취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은 기능적 수단이 되는 함정이 있다.

셋째,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사랑의 단계다. 전적인 헌신과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사랑의 단계에 들어간다.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인가.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이 단계의 사랑이 약하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거치면서 피땀 흘리는 헌신과 충성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 단계도 주님과의 완전한 합일의 단계는 아니다. 더 높은 단계가 있다.

넷째, 하나님을 위한 내 사랑의 단계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합일의 경지에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다. 주님과의 합일의 경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며 하나님 사랑이 내 사랑이 된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밟고 나를 사랑하자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숨 쉬고 먹고 마시는 주님과의 깊은 합일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자기 사랑이 필요한 때다. 깊은 밤, 성 버나드를 묵상하며 내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지금 과연 나를 위한 사랑이 하나님을 위한 사랑인가.”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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