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아픔을 아는 사람

첨부 1


-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예수님은 이 세대의 특징을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시대”(마11:17)라고 말씀하신다. 한마디로 말해서 슬퍼할 줄도,기뻐할 줄도 모른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진정으로 슬퍼했던 적이 언제인가? 슬픔이란 가슴이 찢어지고, 숨쉬기조차 쉽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런 깊은 아픔을 느꼈을 때가 바로 진정으로 사랑했던 때이다. 최근 들어 진정으로 기뻐했던 적이 언제인가? 진정한 기쁨이란 지금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상태를 말한다. 그냥 조금 좋았을 뿐이지, 깊은 기쁨을 느끼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깊은 아픔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깊은 기쁨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울지 못하는 마음은 병든 마음이다. ‘진정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의 작가 시 에스 루이스는 8세에 어머니가 죽었다.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우주이다. 어머니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루이스는 울지 않고,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왜? 울면 아프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프기 때문이다. 대신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일에 깊이 집중하고 매진했다. 일종의 감정의 장벽을 쌓은 것이다. 대개 그런 식으로 10대, 20대를 보내면 문제가 크지 않다.

그런데 루이스는 60대가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학식 깊은 세기의 학자였지만, 사랑을 모르는 냉철한 이성주의자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60대에 조이 데이빗맨을 만났다. 데이빗맨은 한 시대의 영성가, 시대의 석학을 보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당신은 왜 그 따위로 살아가는 것인가? 당신이 사랑이 뭔지 아는가?” 충격스런 도전에 루이스는 그녀에게 사랑을 가르쳐달라고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은 60대에 결혼한다. 결혼할 당시에 데이빗맨은 암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3년2개월을 살다 죽는다. 나중에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데이빗맨과 보냈던 3년2개월이었다고. 아픔을 부인하고,벽을 쌓으면, 사랑을 모른다. 교류를 모른다. 산다고 해도 사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부인하면,잔인해진다. 잔인해지려면 느끼지 말아야 한다. 괴로우면 어떻게 잔인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의 사랑은 아픔을 품는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항상 아프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자리이다. 어머니의 가슴에서는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난다. 괴로워도 아픔을 품는 것을 두려워말라. 아픔을 품어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픔을 품어야 사랑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픔을 품어야 진정으로 사는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