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손해 좀 보고 살자

첨부 1


-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항상 갈등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갈등도 희생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봄바람에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희생은 어머니의 자녀 양육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성장케 하는 힘이 있다. 동시에 희생은 극심한 갈등이 있는 곳에 평화를 심는 능력이 있다.

그러면 쉽게 설명해서 희생이 무엇인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내 일’도 아니고 ‘네 일’도 아닌 것이 있다. 분명히 누군가가 해야하지만 명확하게 책임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기꺼이 나서는 것이 희생이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개개인이 환전을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하기 때문에 몇 사람이 돈을 모아서 함께 환전할 때가 있다. 3명이 모은 돈이 10달러가 되었다고 하자. 문제는 3명이 공평하게 나누는 데 있다. 한 사람의 지분은 33.33%이다. 대개 인간 갈등의 문제는 이런 단순한 데에서 발생한다. 이럴 때 기꺼이 내가 3달러를 가질테니 둘 중 한 사람이 4달러를 가지라고 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희생을 감수한 사람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심한 갈등이 있는 모임에서는 누가 3달러와 4달러를 갖게 되는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런 갈등까지도 녹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2달러를 가질 테니 나머지 두 사람이 4달러씩 가지라고 하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 2:4:4의 원리를 붙드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희생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생활 속에 들어가보면 100% 희생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지분 33.33%에서 3.33%만 포기하면 평화가 임한다. 더 심한 상황에서는 13.33%만 포기하면 평화가 임한다. 이런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성자가 된다. 이것이 희생의 길이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은 많다. 희생을 외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작은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앙이 무엇인가? 자기부인에 있고 십자가를 지는 데 있는 것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생활속에서 손해 좀 보고 살자. 희생하며 살자. 그러면 평화를 맛볼 것이다. 어떤 때는 좀더 심한 희생을 감수해보자. 사람들에게 작은 성자라는 칭호를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작은 성자 놀이도 즐겁지 않겠는가?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