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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욕망의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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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태화 교수

얼마 전 매스컴 보도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기사였다. 동방예의지국,염치지심의 나라,반만년 문화대국으로 불렸던 우리나라는 그동안 혈연과 가족애가 남달리 끈끈한 나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 불명예스런 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는가. 연 1만명 남짓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개인의 문제라고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1만명이라는 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슷하다. 과속과 운전 부주의,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이렇게 많다니 이로 인한 가정 파괴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출산율 또한 낮다니,이렇게 가다간 한민족의 혈통과 미래가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혹 우리 사회 속에 예기치 않은 바이러스라도 침입해 있는 것은 아닌가.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의 충동적 요소 타나토스에라도 감염된 것은 아닌지.

E 프롬은 반사회적 행동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가 쇠퇴의 증후군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계화되어가는 산업주의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경쟁심에 시달리고 삶에 허덕이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이기보다는 이기적 계산이 앞선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존재의 삶을 포기하고 소유의 욕망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누구인가,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고뇌는 무의미해진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해야 삶의 행복을 느끼는 의미의 역전 현상까지 생기게 된다. 우리 사회 안에 어쩌면 소유의 욕망이 새로운 신화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신화는 종교적 힘이 있다. 신화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이자 이데올로기가 된다. 이 욕망의 신화가 우리나라를 휘젓고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고귀하게 지음받은 백성이 욕망의 좀비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로 허무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토 여기저기에서 왜곡된 신화에 중독되어 가슴앓이하며 신음하는 백성을 구해야 한다. 국가가 빨리 나서지 못하면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같은 교회여 부디 일어나소서. 어머니의 심장으로 위로하소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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