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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만족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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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호 목사(새로남 교회)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토요일 휴무, 주5일 근무제, 이런 일들은 한 세대 전만 해도 꿈만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성경은 금욕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맑은 날을 누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비바람 몰아치는 날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뭔가 생명력이 약동하는 삶을 살려면 오늘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리라고 하신 것을 누릴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이 복음적인 누림, 성경적인 누림, 나도 예수 믿으면 저렇게 누릴 수 있는 만족하는 사람이 되는구나 깨달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서 만족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원리와 비밀을 우리 함께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만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I. 긍정적 자아상

자기 가치관과 자기 신뢰감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전도서 9장7절상). 왜 우리가 말씀처럼 음식을 대할 때 기쁨 마음으로, 일상생활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까? “이는 하나님이 너희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라.”(전도서 9장 7절하) 이 가운데 ‘벌써’ 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여러분, 복음은 윤리이상입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해서 그 행위를 잣대에 재가지고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두들겨 패는 것은 인과응보 사상입니다. 물론 복음적인 요소가운데 인과응보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과응보적인 사상은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행위대로 갚으셨다면 우리중 몇 사람이 여기 남아 있겠습니까? 너희의 하는 일을, 우리의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은 일을 하는 주체인 우리 자체를 먼저 기쁘게 받으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윤리는 무엇입니까? 이 복음적인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은혜를 받은 자답게 살기 위해서 땀 흘리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 수고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성과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윤리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가리켜서는 은혜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기 가치관이나 자기 신뢰감은 어디서 옵니까? 내가 가진 소유나 직급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용납해주심과 하나님의 기뻐하심 가운데 우리는 무한히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윤리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윤리적인 부모는 자녀들의 행위를 감시합니다.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재판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부모는 행위 이전에 ‘나는 너의 존재를 기뻐한다. 네가 나의 딸인 것과 아들인 것이 나의 기쁨이요 하나님이 주신 분복’이라고 말합니다. 접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만족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무한히 긍정적인 자아상을 회복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부모님이 긍정적이 될 때 자녀들이 긍정적으로 됩니다.

순장님이 긍정적일 때 순원들도 긍정적이 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긍정적으로 아이들을 대할 때 거기서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 청소년들도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도 긍정적으로 사셨습니다. 여기에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다. 이것은 좋게 보신다. 인정하신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십니다. 주님이 왜 갈보리 언덕을 오르시고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을 볼 때, 양손에 허리에 우리를 사랑하는 흔적을 볼 때, 나를 인정하셨구나, 나를 받아들이셨구나, 나를 포용해 주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무한히 긍정적인 마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긍정이 되는 것입니다.

II. 건강한 자신 관리

이런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성도는 건강하게 자신을 관리합니다. 자신을 방치 하지 않습니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찌니라.”(전도서 9장 8절) 네 의복을 깔끔하게 하라는 것은 단아하게 우아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찌니라. 자기를 가꾸는 표현으로서 머리를 어떻게 여성들이 손을 보느냐에 따라 그의 품격이 결정됩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스럽게 사는 것, 사치하는 것, 화려하게 입는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단정한 머리를 가꿀 때 그것은 자기의 표현입니다. 복음적인 삶은 우리의 자신을 가꾸는 삶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한주동안 여러 사람들을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만날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자신의 모습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기에 나는 주 앞에 열려 있으니 괜찮다. 오해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로 봅니다. 우린 사람들과 더불어 삽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지만 사람들과 더불어 삽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건강한 자기 개발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사, 여러분의 재능,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을 땅에 묻어 두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극대화 시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III. 사랑의 가족 관계

사랑의 가족관계, 사랑의 대인관계입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도서 9장 9절) 여기서 헛되다 것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사랑 벗어나서 사는 일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아내와 즐겁게 사는 것. 남편과 즐겁게 사는 것. 부모님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자녀. 자녀를 품어주는 부모님. 인간관계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간관계란 영원하지 않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러한 인간의 유한함을 마음에 깊이 생각한 나머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하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의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여러분, 감사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까? 지금 감사하십시오. 오늘이라고 하는 말, 나에게 부여된 한정된 시간에 부모님께 ‘아버님, 감사합니다.’ 이번 명절에 뵙거든 시간을 놓치기 전에 ‘어머니 사랑해요. 아버지 감사해요.’ 아울러 가족들 모두에게 지금 감사하고 지금 격려하고 지금 축복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십시오. 인정해 주십시오. 용납해 주십시오. 기다려 주십시오.

IV. 일을 즐기는 태도

“무릇 너의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전도서 9장 10절) 노는 것인지 일하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일을 할 때는 똑 부러지게 해야 합니다. 전을 하나 붙여도 사명감을 가지고 전을 붙여야 됩니다. 신경을 써서 명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일하는 태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공생애 사시기 전에 직업이 목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만든 모든 가구는 명품이 된 줄 믿습니다. 못을 하나 박아도 깔끔하게 마지막 정리를 깔끔하게! 사도바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적인 위대한 전도자이지만 그에게 직업이 있었습니다. 텐트메이커! 텐트를 만드는 전문가였습니다. 깔끔합니다.

다윗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윗은 제왕이기 전에 목동이었습니다. 다윗이 양칠 때 혼자 피리 불고 잠을 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늑대라든지 곰이라든지 이리라든지 사자가 달려와서 양떼를 해치려고 할 때 평소의 물맷돌을 가지고 좇아가 싸워서 품고 달아나는 맹수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양떼를 구했습니다.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쉼이 의미가 없습니다. 일을 해도 쉬는 것처럼 놀면서 하는 사람이 무슨 연휴가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새로남교회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일할 때 똑 부러지게 일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9:4) 일할 수 있는 그 시점을 놓치지 말고 한정된 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9:10절을 보십시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9:10) 일이 주어졌을 때 불평하지 말고 그 일을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11절과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나를 가꾸고 아무리 사랑의 관계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인정하고 고백하고 살 때 그 성도와 인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족스러운 인생으로 살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우리가 당하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기쁨을 확산시키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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