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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슬렘의 나라 아프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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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땅끝까지 이르러”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주님께서 11사도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사도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다고 했다. 그 당시 ‘땅끝’은 반 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인 소아시아와 로마를 비롯해서 아직 어두움과 사망이 깃들고 있던 소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와 북 남미와 호주와 아시아 대륙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땅끝’은 공산권 지역과 함께 모슬렘권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 2천여년 동안 기독교는 ‘땅끝’ 이라고 볼 수 있는 모슬렘권에 이르러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실패했다. 모슬렘을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십자군적’ 시도는 있어왔지만, 모슬렘을 사랑과 순교의 정신으로 품으려는 ‘십자가적’ 선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미국의 반 이슬람 정책이 빚어낸 9.11테러 사건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증오와 적대감은 더욱 더 깊어지고 심각해졌다.

그런데 전재옥 교수와 이동휘 목사와 같은 모슬렘선교의 선각자들은 이미 모슬렘 선교를 착수하고 있었고, 상당수의 한인 선교사들은 모슬렘권 중앙아시아에 이르러 선교사역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카작과 키르키스탄과 우즈벡과 타직과 아프간에서 이루어진 선교의 사역은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폐허의 땅 아프간에 가다”

2년 전인 2003년 7월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을 때 나는 50도의 뜨거운 열기와 먼지투성이 속을 걷고 달리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한국교회가 세워준 3개 학교의 개교행사에 참여하면서, 내가 가지고 간 학용품 선물 가방들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수 많은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학교 하나만 더 지어줄 수 없느냐고 나에게 다가와서 간청하는 압둘라우 장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프간을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9.11사건 이후 모슬렘에 대한 나의 태도가 완전히 바꾸어진 탓도 있다.

결국 나는 지난 2년 동안 강변교회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쿤두스지역 무랃취흐 마을에 무랃취흐(Murodsheh)학교를 하나 세울 수 있었고 이 학교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아프간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타직에 본거지를 두고 아프간 사역에 전력하고 있는 이미정 선교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아프간에 있다가 타직에 가면 타직이 천국같고, 타직에 있다가 우즈벡에 가면 우즈벡이 천국같고, 우즈벡에 있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이 천국 같아요.” 나는 황폐한 땅 아프간에 사는 어린이들을 잊을 수 없어서 1,400만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지난 12월 15일 밤 국경을 넘어 ‘지옥’과 같은 아프간에 간 것이었다.

타직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우즈벡에서 15일 새벽 3시에 떠나 자동차로 23시간을 달려서 우여곡절끝에 아프간 국경을 넘은 후 달리고 또 달려서 16일 새벽 2시경 아프간 쿤두스에 도착했다. 아프간의 국경수비대장 들라워 장군을 국경에서 처음 만났지만 20여분간 그의 사무실에서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하면서 그는 “대우가 일등, 현대가 일등, 한국이 일등”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미국을 극히 싫어하면서도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16일 아침 10시 무랃취흐 학교 준공식에 참석했다. 400여명의 어린이들과 100여명의 지역 지도자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길 좌우편에 길게 서서 우리 일행을 열렬하게 환호했다. 10여 미터를 지날 때 마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종이로 만든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면서 우리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다.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이윽고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주지사와 교육감 등의 환영사가 있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환영사였다. 어린이들이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발음이 정확한 한국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400여명 학생들에게 Korean Church 라는 글이 인쇄된 가방과 티셔츠와 학용품 선물을 나눠주었을 때 저들은 너무너무 좋아했다. 가난의 빛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귀엽고 예쁜 얼굴들에 행복한 웃음들이 꽃 피어나고 있었다.

1억원을 들여 새로 지어진 학교는 16여 개의 교실을 갖춘 아담한 학교였다. 운동장 부지도 갖추고 있었다. 학교 팻말에는 KFH라는 글과 함께 Kangbyu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의 의도와 요청과는 어긋나는 글자였다. 강변이라는 말 대신 Korean Church라는 말을 넣으라고 신신 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아직은 학교 팻말에 Church 라는 말을 넣으면 적대와 테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강변이라는 글자만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할 수 없었다. 다음 번에 짓는 학교 팻말에는 버젓이 “한국 교회 후원”이라는 말이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라는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이번에 학교를 짓는데 그리고 사랑의 선물을 보내는데 기도와 헌금으로 참여하신 사랑하는 강변교회 성도들에게 눈물겨운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복음의 불길이 일어나는 타직으로 그리고 우즈벡으로”

다음날(토) 두 학교를 방문하고 (가지고 간 나머지 선물들은 개학 때 세 학교 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부탁하고) 오후에 타직 비자가 나와서 2시간 자동차로 달려서 두샨베로 갔다. 하룻밤을 쉬고 18일 주일아침 10시에 두샨베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500여명의 현지인 모슬렘 사람들과 3시간 이상 뜨거운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어우러진 감동적인 예배를 드렸다. 마치 12년 전 로마니아에서 드린 감동적인 예배와 비슷했다. 나는 1시간 이상 설교를 하면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기를 그렇게도 소원했던, 버려진 땅의 모슬렘들에게 이르러 복음을 전하기를 그렇게도 소원했던 사도 바울과 성프랜시스와 그들의 후예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두샨베 교회는 지난 2000년 10월 모슬렘 과격파들의 테러를 당해 교회당이 파괴되고 11명의 성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린 적이 있다. 그러나 저들은 테러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모슬렘권 선교를 저들의 지상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19일 아침 타직의 두샨베를 떠나 타직의 후잔을 거쳐 다시 우즈벡 타시켄트로 돌아왔다. 후잔에서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복음 사역을 힘 있게 하고 있는 이종분 목사를 잠시 만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가슴 깊은 사랑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국경을 넘어 육로로 타시켄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는 저녁이었다. ‘이층 천국’ 같은 우즈벡에서 하룻 밤을 푹 쉬고 20일 낮에는 현지에서 목회하고 있는 10여명 고려인 목회자들과 한인 선교사들 10여명이 함께 모여 점심을 나눈 후 2시간 동안 대화식 강의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들 참으로 좋아했다. 고려인 목회자들 중에서 소련선교회를 통해 한국에서 나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 반가운 시간들이었다.

저녁에는 타시켄트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 부부를 초청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했는데 30여명이 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리 일행을 포함해서 80여명이 참석해서 모두들 놀랐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면서 불안과 불확실과 두려움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사역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들이 얼마나 우리들과의 만남을 갈망하고 기다리고 있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2시간 여 동안 대화식 강의를 했는데 마음과 가슴이 서로 통하는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 ‘슬픔’도 ‘아픔’도 좋은 것이고 보석 같은 은혜라고 말하면서 나의 소박한 간증을 했을 때 선교사 사모들의 눈에는 눈물들이 맺히고 있었다. 즐겁고 후련하고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날 저녁에 내가 지불한 식사비 800불은 8000불에 해당하는 값진 것이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감사하고 감사한 것뿐이다. 한 가지 첨부하는 것은 중앙 아시아 모슬렘 현지인들이 기독교를 부시의 종교로 간주하며 선교사들을 추방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시적인 기독교 행사가 선교사들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모슬렘 지역에서 한국교회는 조용히 선교하여야 할 것이고 미국 기독교와 너무 일치시키지 않고 한국적인 모습의 기독교를 나타내 보이며 모슬렘과 친구가 되도록 힘쓰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한국교회의 사명”

베드로와 바울이 시작한 사도행전적 선교가 지금 모슬렘 땅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이 지금 쓰여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를 사도행전 마지막 장의 주역들로 사용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 오실 날이 임박한 마지막 날의 징조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공산권 선교와 함께 모슬렘권 선교의 마지막 주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단 한가지 경계할 점이 있다.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이 일을 수행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가 높아지려고 했을 때 사탄이 공격했다. 은사나 열매나 성과를 나타내며 내가 높아지려고 할 때 사탄은 총 공격을 시도한다. 예외는 한 사람도 없다.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연합과 협력을 이루면서 이 일을 수행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주님의 마지막 기도였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분쟁과 분열이 있는 곳에 사탄이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드린 처절한 기도와 고백들이 우리들의 기도와 고백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다윗).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사도 바울). “나는 망할자이옵니다. 나는 망할자이옵니다”(어거스틴). “나는 지극히 작은 벌레입니다”(프랜시스).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 “이놈이 주님이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한국교회의 폴리캅인 주기철 목사).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한국교회의 예레미야 김치선 목사).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박윤선 목사). “나는 신사 참배한 죄인입니다”(템플턴 수상 축하기념회 석상에서 한경직 목사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 “나는 값싼 싸구려 은혜만을 전한 죄인입니다”(조용기 목사).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문제는 봉급과 명예만 생각하며 교수의 일을 한 외식쟁이인 나의 잘못과 죄에 기인합니다”(주선애 교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십자가의 복음과 사랑과 고난과 순교를 짊어지고 오늘의 땅끝인 평양과 아프간과 이라크에 이르러 제물 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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