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새로운 영적 체험

첨부 1


- 이강 목사(뉴욕감리교회)

코끼리는 원래 몸집이 크고 힘이 장사라 어떤 짐승도 감히 도전하지 않습니다.  수 십 년 묵은 아름다운 나무도 뿌리채 뽑아버릴 수 있고, 수 십 미터 되는 큰 나무도 코로 감아 올려 간단히 운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 들어가 작은 기둥에 다리를 매어 놓으면 가만히 서있습니다.  만일 코끼리가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사슬을 끊고 도망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타성 때문입니다.

코끼리가 태어나서 얼마 안될 때에 매어놓으면 어릴 때는 발버둥을 치며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몇 해 지나면서 체념하고 순응하다가 그것이 타성이 되고, 근성이 되어 버립니다.  인간 이외의 모든 생물들은 한번 길들여진 타성이 생기면 일생동안 그 조건들을 초월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이기에 주어진 현실을 초월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제한적이고 이에 따른 고정 관념에 길들여져 있다할지라도 돌파구(breakthrough)가 열리고, 가능성을 보게되면 현실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초월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꿈이나 환상입니다.  꿈이나 환상은 우리가 길들여지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현실을 초월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안배입니다.  그렇기에 꿈이나 환상은 어떤 리더쉽 세미나나 책을 통해 얻어지는 "비전"과는 다릅니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꿈은 우리가 흔히 남을 격려할 때 "꿈을 가져라"하고 말하는 그런 꿈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꿈은 성령께서 은사로 주시는 "영적인 꿈"을 의미합니다.  꿈이나 환상이 영적 체험이기에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현실을 초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원리를 익히 깨달으셨기에 요엘 선지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합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또한 예언과 동시에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초월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영적인)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십니다.  영적 체험이 없이는 현실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 이상은 그의 작품 "날개"에서 "날자 날자 또 한번 날자꾸나"하며 절규하였지만 끝내 현실을 초월하지 못하고 폐병으로 죽습니다.  철학자 니이체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신은 죽었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인간이란 초극되어야 할 어떤 것이로다" 그러나 그도 현실을 초월하지 못하고 자살해 죽고 맙니다.

영적 체험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신비한 사건을 동반합니다.  모세는 가시나무 떨기에 타지않는 불로 임하신 하나님을 뵙고 그의 음성을 듣는 순간, 430년 동안 노예 근성을 지닌 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리더가 됩니다.  난공불락의 현실을 초월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체험을 하더니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현실을 초월해 버립니다.  요단을 가르고 여리고를 무너뜨리며,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하는 이적을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이제 이러한 영적 체험을 새롭게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퇴보가 이루어지는 이 때에 우리는 탁상공론과 함께 방법론에 치우치는 세상적인 방법에 의존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야 말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회복하고, "성령의 나타 나심"을 우리 가운데 사모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현실이라는 여리고와 같은 난공불락의 요새들을 새로운 영적 체험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그 어떤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나타나심을 소원함으로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나타내시게 해야 합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